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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지혜
에디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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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1

‘나다움’이 뭔데? 그거 어떻게 찾는데?

10대들이 가장 ‘나답게' 만나는 곳, 유스보이스

청소년
유스보이스

에디터의 말

최근 MBTI 테스트의 인기가 높다. 쉽고 간편하게 성격 유형을 알아볼 수 있어서 재미삼아 보는 이들이 많다. MBTI 테스트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별자리를 맞춰보거나 타로를 하면서 성격 유형을 파악한다.

더 진지하게는 심리 상담을 받고, '자아 성장' 코칭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은지 알고 싶어서다.

나를 잘 알면 인생을 더 수월하고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우리는 언제나 '남들의 눈'을 의식하고 '사회적 지위' '학업 성적' 같은 기준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 대해 질문하는 일도 연습이 필요한데, 성장기 때부터 생각해본 적이 적어서 그 방법을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비영리단체 유스보이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짜 나를 발견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학업 성적이나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나에 대해 탐색하는 일이다. '공부하는 나'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나' 같은 '역할'에 우선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찾는다.

뜻은 좋은데, '그래서 어떻게?' 하는 질문이 남는다. 유스보이스가 '나다움'을 찾는 여정을 따라가보았다.

바질을 키우는 데도 온 정성이 필요한데

열 명의 청소년에게 똑같은 바질 씨앗을 나눠주었다. 이들은 어디에 씨앗을 심고 얼마나 정성을 들일까? 바질은 어떻게 자랐을까?

당연하지만 흥미롭게도 결과는 저마다 달랐다. 아주 작은 화분에 넣는 바람에 촘촘하게 자라기도 하고 물을 제때 주지 않아서 느릿느릿 커가는 새싹도 있었다. 한 학생은 학교 화단에 바질 씨앗을 심어 30개 모종으로 나눈 뒤,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나눠주었다.

식물을 가꾸려면 영양가 있는 토양과 햇살, 바람이 필요하다.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이들 청소년에게 주어진 미션은 바질을 풍성하게 키우는 게 아니었다. 그저 씨앗을 받아 심기만 해도, 그리고 그 결과를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

청소년이 '나다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단체 유스보이스는 '나다움'이 식물 키우기 같다고 생각했다. '인풋'을 해도 '바로 실행하기'가 되지 않으면 금방 지루해하고 포기하는 일이 생기는데, 식물을 가꾸는 일은 꾸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리 신청한 청소년 10명에게 바질 씨앗을 나눠주고 한 달 후 온라인으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그 이유를 찾아 타인과 소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표현하는 순간순간이 모여야 한다.

이런 순간은 삶을 사는 동력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데, 청소년기에는 왜 이런 질문을 멈추고 학업에만 열중해야 할까?

각기 다른 화분에 심어진 바질. 조금씩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똑같은 바질 씨앗을 나누어주어도 키우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유스보이스 김재순 대표가 생각하기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청소년이다. 학교와 학원에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가기 급급해서,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시간이 없어서 참가할 수 없는 청소년들도 많다.

사회는 청소년 개인을 바라보기보다 학교라는 틀과 환경 안에서 존재하는 이들에게만 집중한다. 그게 아니면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눈을 돌린다. 청소년을 집단이 아니라 개개인으로 보는 환경이 얼마나 될까.

김 대표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 낯설고, 그만큼 더 무궁무진한 세계를 가진 청소년 개개인에 주목했다.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나'에 대해 생각할 기회와 시간을 주는 프로그램을 구상한 것이다. 일명 TMI 프로젝트(Time for My Inside의 약자)다. '내면을 위한 시간.'

자기를 돌아보는데 돈을 준다고?

바질 씨앗을 심은 다음에는 엉뚱한 일들을 벌였다.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 아날로그 전자기기를 분해했다가 재조립해보기, 네이버지도에 없는 우리 동네 건물 등록하기 등이다. 이 엉뚱한 일들을 '발견미션'이라고 부른다. 실수가 아니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법한 이런 일들을 마흔네 가지 고안했다.

모두 다 사소하고, 직접 해봐야 하는 일들이다. 새로움을 통해서 다양성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발견미션'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본보기 같은 거였다.

미션 중에는 '내가 바라보는 나와 친구가 바라보는 나에 대해 인터뷰하기'가 있다. 유스보이스 참가자인 백채윤씨는 이 미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는 채윤씨가 스스로 부족하고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더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나오지 않을 법한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새롭게 알게 됐어요. 제 생각보다 제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어 덕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바질을 심고 '미션'을 수행하기만 하는데, 놀랍게도 청소년들은 돈을 받는다. 총 43만 원 정도다. 미션 하나당 5시간을 부여받고 최대 다섯 개 미션을 수행한다. 금액은 최저임금(2021년 기준 시간당 8720원)의 두 배 가량이다.

유스보이스는 '자기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지원해주자'는 목표를 설정하면서 이 '시간'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게 바로 돈이었다. 이 돈은 용돈을 받는 것과 다르고, 공부를 잘해서 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얻는 장학금, 알바비와도 다르다. 오로지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를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는 청소년들.
'발견미션'을 앞두고 온라인으로 만난 유스보이스 TMI 프로젝트 참가자들.

이런 활동에는 '잘한 것' '못한 것'이란 평가가 없다. 미션을 해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만 서로 나눈다. '자기다움'에는 잘하고 못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청소년들은 평가를 받는 순간 어른들의 눈치를 본다. 어른들이 싫어할 만한 요소를 덜어내고 정형화된 것을 찾는다.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의 배경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게 진짜 너한테서 출발한 거야?'

또다른 약속은 서로의 신상정보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다. '몇 살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는 유스보이스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칫 학원과 다를 바 없어지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스보이스는 나이와 출신 등에 대한 정보 대신 오직 '사람'에만 집중한다.

실제로 유스보이스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지난해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수능을 쳤는지, 대학에 갔는지 서로 알지 못했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이상, '미래'에 대해서 누구도 먼저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 보여줄 필요 없어, 너의 마음만 봐'

유스보이스는 청소년이 '나다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단체이자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그럴싸한' 교육 매뉴얼은 없다. 유스보이스의 참가자들이 얻는 만족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아니다.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서 오는 설렘과 또 다른 기대에 가깝다. 바질을 심고 '발견미션'을 수행하는 등 이러한 과정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으며, 최종적으로 미디어라는 도구를 통해 '나다움'을 재현하는 일을 목표로 한다.

영상이나 사진, 글, 그림, 음악 같은 미디어로 표현하는 게 왜 중요할까? 김 대표가 보기에 청소년들은 미디어를 많이 접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담는 일은 드물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라는 마음에, 꺼내놓지 못하고 위축된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표현해보면서 반응을 얻고, 이 과정에서 공감을 받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차리고 더 해내고 싶은 용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나다움'을 찾는 교육은 어떤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내 마음을 대면해본 경험이 적으면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택을 하기 쉽다. 내 마음을 마주하는 일의 전제조건은 '나에게 솔직함'이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고 또 피하고 싶은지 지켜보아야 한다.

이런 마음 때문에 김 대표는 전시를 앞두고 살짝 긴장했다. 바질을 키우고, 미션을 실행한 다음 마지막 과정인 미디어(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여는 일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안경을 쓴 30대 남성이 의자에 앉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청소년이 '미디어' 제작 활동을 통해 '나다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유스보이스 김재순 대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 생각해본 경험이 적은 청소년은 '누구에게 잘 보여줘야 하나요' 같은 질문을 해왔다. '잘 보여줄 필요 없어, 스스로 내면에 초점을 맞춰보자' 하고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지만, '정말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생기기도 했다.

가장 큰 응원과 지지는 기다림이었다. 청소년 당사자가 원하면 언제든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성인 멘토가 있지만 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응원했다.

그 끝에 기대보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책임과 권한을 갖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어 더 잘해보려고 했다. 1월 21~27일 서울 안국역 인근 아트스페이스이색에서 열린 ❮시계의 손 - 10대,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저마다 마음껏 표현한 작품을 한 곳에 모였다.

두 달 동안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완성한 작품이다. 유스보이스 측에서 장소를 섭외하고 일정을 조율했지만,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고 직접 설치하는 일까지 모두 참가자들이 도맡았다.

백채윤씨는 여섯 개 캔버스에 주인공이 동굴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입시를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소홀해졌는데, '대학에 가더라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면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안경을 쓴 10대 청소년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그린 동굴과 바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스보이스 TMI 프로젝트 참가자 백채윤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림 안에 담긴 동굴은 자신의 내면세계였다. 잊고 싶은 감정을 더 깊게 마주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스스로 몰랐던 가능성을 바라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작품을 그리는 동안 스스로를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지금 하고 싶은 걸 바탕으로 풀어내야, 다음에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더 잘 풀어낼 수 있잖아요."

그림 외에도 전시된 작품의 장르는 다양했다. 아주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담은 웹툰, 코로나19 이후 느낀 학교 생활을 담은 사진, 우울한 날 만든 소중한 노래, 자퇴생이란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친 기록을 담은 에세이 등. 지난 8개월간 '나다운 나의 이야기'를 고민하며 표현한 결과였다.

채윤씨에게 TMI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였을까? 한마디로 '기회'였다. "영상도 만들어보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지만 막연한 욕구만 있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금전적 지원, 내 말을 경청해주는 분위기까지 모든 게 기회였어요."

코로나19 이후의 학교를 사진에 담아 모빌로 전시한 진채현씨에게도 유스보이스에서의 경험은 특별하다. "한복디자이너나 승무원 같은 제 직업적 꿈에 TMI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직업 말고 제 삶이 있잖아요."

"유스보이스는 제 삶을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지를 보내준 느낌이 들어요."

바질을 심는 데서부터 출발한 1기 TMI 프로그램은 전시회를 끝으로 종료되었다. 조만간 새로운 TMI 프로그램과 정기 미디어 교육을 열 계획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참가자들이 함께 만든 휴대폰 거치대와 그 판이 놓여 있고 벽면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1월에 열린 <시계의 손 - 10대,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 전시 현장.

미뤄야만 하는 일, 그런 '나중'은 없어

유스보이스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은 단 하나다.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하는 9~24세 청소년(청소년 기본법에 따른 나이 제한).' 지역에 관계없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어디에 살든 가정형편이 어떻든 간에 모든 청소년들에게는 나다움을 찾을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나다움'을 찾는 교육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정규 학교 수업시간을 피해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더 힘이 들수도 있다. 좋은 대학을 가게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아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것이다. "학업도 너무 중요하고 대학도 중요해. 다만 더 중요한 건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거야. 그래야 네가 살고자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

'우리가 시간이 없지,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냐!'라고 적힌 안내문.
전시장에 부착된 문구.

청소년들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나중에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하는 고민, 현재의 관심사는 또 바뀔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 들여다보고 표현하기 시작해 견고해지면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더 잘해낼 수 있다.

김재순 대표가 보기엔 청소년이라서 미뤄야만 하는 일, 그런 '나중'이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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