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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
2021-10-15
휠체어를 타고

처음부터 잘 만들지 그랬어?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휠체어를 위한 지하철 환승지도를 만드는 무의 홍윤희 대표, 유지민 활동가

장애
이동권
휠체어
장애인화장실

에디터의 말:

대학생 때 과 대표를 한 적이 있어요. 개강총회, 종강총회 뒤풀이 장소를 잡는 것이 주요 임무 중 하나였는데요. 메뉴와 예산을 정하고 단체석을 예약하면 끝. 간단했어요. 전동 휠체어를 타는 후배가 입학하기 전까진.

대학가 앞에 즐비한 술집 중 놀랍게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어요. 1층에 있는 가게도 막상 가 보면 높은 턱이나 2~3개의 계단이 있기 일쑤. 그 이후로 한동안은 가게 입구를 볼 때마다 문턱이나 계단이 있는지 없는지만 눈에 띄더라고요. 휠체어를 고려하는 '새로운 눈'이 생긴 것처럼.

장애를 무의미하게 만들자는 협동조합 '무의'는 당시의 저에게 꼭 필요했던 서비스를 만들어요. 바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교통 환승 동선, 궁궐 산책 동선, 편의 시설 위치 정보가 들어간 지도입니다. 흔히들 사용하는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은 완전히 비장애인 기준이에요. 어떤 가게 앞에 문턱이나 계단이 있는지 알 방법이 없고, 이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니까요.

무의 대표 홍윤희 님과 딸 유지민 님이 닷페이스에게 '휠체어를 탄 시선으로 바라 본 세상'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홍윤희: 장애를 무의미하게 만들자는 협동조합 '무의' 대표로 장애인 이동권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홍윤희라고 합니다. 유지민의 엄마입니다.

유지민: 안녕하세요. 중학교 3학년 다니고 있는 유지민이라고 합니다.

홍윤희: 지민이는 무의 활동에 영감이 되어주고 있는 '영감님'이에요. 왜냐하면 무의는 지민이에게 불편한 세상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로 시작을 했거든요.

무의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홍윤희: 저희는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서울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서울 궁 지도, 서울 사대문안 휠체어 산책지도(링크)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SNS 챌린지 등 장애인 이동권을 증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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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무의 활동을 돕고 있어요. 지도를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답사에 함께 가요.

직접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입구에 턱이 없는지, 터치식 버튼이 달린 자동문이 있는지, 매장에 좌식 테이블밖에 없는지,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지,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가 분리되어 있는지, 종업원들의 마인드는 어떤지 보는 거죠. 어릴 때는 시내 놀러 나간다는 개념으로 다녔던 것 같아요. 일을 돕는다고 생각한 지는 솔직히 얼마 안 됐어요.

홍윤희: 지도를 만들기 위한 정보 수집은 비장애인 자원봉사자분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비장애인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에 공감해줬으면 하거든요.

휠체어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정보 수집을 하다보면, 우리 사회 인프라의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일 것 같아요.

홍윤희: 그렇죠. 턱이 너무 높아서 들어갈 데가 없는 건 이제 그냥 기본이고. 그래서 오히려 각오를 하고 가기 때문에 그건 괜찮은데.

제일 힘든 건, 기본적으로 인도 자체가 좁은 곳이 정말 많아요. 휠체어가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그럼 이제 길이 좁으니까 걷는 비장애인들도 불편하잖아요.

미아사거리역 주변에서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직접 수집하는 무의 휠체어 특공대. 무의는 서울 주요 지하철역 50곳 주변 번화가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미아사거리역 주변에서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직접 수집하는 무의 휠체어 특공대. 무의는 서울 주요 지하철역 50곳 주변 번화가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녀본 활동가들이 그런 말을 많이 듣는대요. "왜 나와서 돌아다녀."

좀 비켜달라고 하면 욕을 하면서 지나가는 분들도 있었대요. 핸드폰 보면서 다니느라 앞을 안 보고 걷는 사람들이랑 부딪히기도 하고요. 그게 정말 무섭대요.

그리고 공공 화장실 찾기가 어렵다는 거. 카페에 가서 보통 소변이 보고 싶으면 그냥 건물 화장실에 가잖아요. 휠체어를 타는 분들은 그게 어려워요. 장애인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잘 관리되지 않거나, 규격에 비해 너무 작게 만들어져 있어서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거든요.

이게 참 문제인 것 같아요. 예전에 지민이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휠체어 타는 사람들도 화장실 걱정을 안 하더라고요. 건물을 지을 때 장애인 화장실을 만드는 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대요. 내가 들어간 햄버거집에 화장실이 없더라도 그 옆집이나 옆옆집 정도에는 분명히 화장실이 있다는 거예요. 거기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도심 속에서 '화장실을 못 가서 힘들다'는 문제는 없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법이 좀 물렁해요.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이 있는데요. 법조문에 화장실 같은 편의 시설을 꼭 갖춰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긴 해요.

제4조(접근권)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구체적인 시행령을 보면, 작은 건물이나 매장은 대부분 의무가 면제돼요. 거의 유명무실하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화장실을 안 만들고, 안 만드니까 외출하기 어렵고, 그러면 휠체어 탄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이니까 더 안 만들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는 면적기준이 있다. 300㎡(약 90평) 이하인 곳에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를 위한 편의시설을 안 만들어도 된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업장에 의무가 없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7월, 면적기준을 50㎡(약 15평)으로 개정하겠다고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개정된 기준은 2022년부터 신축, 개축, 증축되는 시설에만 적용된다. 결국 장애인 화장실을 찾을 수 없는 도시는 유지되는 셈이다.

휠체어 이용 지도를 만들 때, 비장애인이 참여하면서 그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걸 느끼시나요?

홍윤희: 그런 에피소드가 많아요. 2018년에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들려고 휠체어 사용자와 노원역에 간 적이 있는데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떤 비장애인 어르신이 다짜고짜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요새는 대통령보다 장애인이 더 대접받아. 백화점에 차를 대려고 하는데 장애인 주차 구역이라고 텅텅 빈 곳에 차를 못 대게 하잖아. 이게 대접을 받는 게 아니고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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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공유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어르신들을 직접 참여시키면 어떨까요?" 이런 제안을 누가 달아주셨더라고요.

실제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협업해서, 어르신들과 함께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드는 활동을 해 봤는데요. 6분과 함께 20개 역을 돌아다녔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한 어르신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거, 내가 나의 미래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만드는 거예요. 내가 지금은 멀쩡히 잘 걸어다니지만,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는 거잖아요."

휠체어를 타는 입장에서 무의가 만든 지도가 정말 편리한가요?

홍윤희: 사실 제가 지도 만드느라 엄청 힘들었다고 하면, 지민이가 생색내지 말라고 막 핀잔을 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느 굉장히 더운 여름날에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의 생일 광고를 보러 가야겠다고, 지하철 역에 가야겠다고 하는 거예요.

"너 어떻게 갈 거야?" "엄마, 걱정하지 마. 무의 지도가 있잖아." 이렇게 얘기를 해서. 오~ 감동.

유지민: 그래.

홍윤희: 진짜 네가 그렇게 얘기했었어. 엄마가 페이스북에 적어놨어. 어떤 아이돌이었지?

유지민: 이건 비공개…

홍윤희: 아, 지금 다섯번째 갈아탔기 때문에?

유지민: 조용히 하라고...

엄마가 하는 일이 저뿐만 아니고 많은 장애인들을 위한 일이고, 또 만약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네. 짱!

무의가 만든 지도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홍윤희: 무의 홈페이지(링크)에서 보실 수 있는데요. 사실 무의가 계속 이런 지도를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지하철은 공공의 공간이고, 공공이 관리하는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서울교통공사가 이 데이터를 업데이트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봐요.

저희는 샘플을 만든 거죠. 시민들이 이런 걸 필요로 한다고 알려주려고요. 잘 모르시더라고요. "난 지하철에서 장애인 본 적이 없는데?" 다들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많이 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공사에서 만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2019년에 행정안전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따로 지도를 만들지 마시고,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에서 이런 동선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1년 뒤, 2020년 7월에 카카오맵에 국토교통부가 만든 교통 약자 환승 정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얹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주 이용하기 편하진 않지만, 그래도 정부가 이런 데이터를 관리하고 많이 사용하는 앱에 깔도록 설득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민님은 외출하는 걸 좋아하시나요?

유지민: 네. 제 또래들이 그렇듯이 카페나 전시회도 좋아하고. 음식 먹으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사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숨겨진 명소나 카페는 접근성 때문에 잘 못 가요. 여의도 IFC몰, 백화점, 강남 코엑스, 이런 대형 쇼핑몰만 가게 되죠. 화장실, 경사로,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이 잘되어 있으니까요.

저는 외출하기 전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항상 미리미리 찾아보고 다녀요. 비장애인 시선으로 보면 되게 귀찮겠다 싶겠지만, 사실 많이 무덤덤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짜증이 날 때는, 막상 갔는데 변수가 생길 때. 예를 들어서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든가, 갑자기 식당을 닫았다든가. 비장애인들은 대안이 굉장히 많지만, 저는 다시 다 찾아봐야 되거든요.

지난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명동역에 놀러 가는데 안내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명동역 엘리베이터가 공사 중이니 휠체어 이용자분들은 근처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안내거든요. 제가 그걸 모르고 내리면 또 헛걸음하는 거잖아요. 그걸 미연에 방지해준 거죠.

그 안내 방송을 딱 들었을 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홍윤희:

시간이라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장애인의 시간은 하루에 24시간이 아니고, 12시간 또는 8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중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버려지거나, 대기하거나, 정보를 찾는 데에 쓰여져요. 그래서 무의 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누군가의 검색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어서예요.

유지민: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드는 추가적인 비용, 또는 더 많이 쓰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것, 이런 것을 통틀어서 '생활비용'이라고 부르는데요.

미아사거리역 주변 정보를 탐방하는 휠체어 특공대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돌아 나오고 있다.
미아사거리역 주변 정보를 탐방하는 휠체어 특공대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돌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저는 지하철을 타서 환승을 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려요.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고, 기다리고, 타고 올라가서 다시 어디로 돌아가야 하고… 그런데 교통카드 환승 할인을 받으려면 30분 이내에 카드를 찍어야 되잖아요. 이게 비장애인 기준으로 설정이 된 거죠. 그래서 저는 환승 할인을 못 받고 요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보증금 500원을 내고 일회용 교통카드를 받을 때 장애인 신분증을 대면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거 이용하지 않아요. 첫 번째 이유는 항상 신분증과 동전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게 사실 굉장히 불편하거든요.

두 번째는 그걸 발급받는 데 또 시간이 들잖아요. 그것도 생활비용이죠. 비장애인 친구들하고 같이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친구들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싫어요. 아무리 친구들은 괜찮다고 해도, 나랑 같이 다닌다는 사실 자체로 불편할 수 있다는 게.

말씀하신 것처럼 비장애인들은 그런 걸 잘 모르고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유지민: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하지만 비장애인들도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게 많잖아요. 휠체어에 앉아 있기 때문에 보이는 거죠. 장애인에게 불친절하게 다가오는 요소들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는 게.

인터뷰를 하는 유지민 님.
인터뷰를 하는 유지민 님.

그래서 저는 굳이 비장애인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장애인이라는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저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휠체어의 시선에서 보는 것도 다른 비장애인 또래 친구들이 못 하는 걸 하고 있는 거니까. 저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2015년부터 무의 활동을 하셨잖아요. 하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유지민: 저는 정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프라이드를 가질 만하다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굉장히 뿌듯한 것이 있고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거나, 신문에 칼럼을 실으면 담임 선생님이 공유해주시거든요. 그러면 친구들이 "와, 지민아. 정말 멋있다. 나도 굉장히 좋은 영감을 얻는다." 이렇게 얘기해주니까. 열심히 하면 장애와 관련 없는 친구들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홍윤희: 지민이가 저한테 용기를 굉장히 많이 줬다고 생각해요. 또 무의 활동도 그렇고요. 제가 뭐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고, 개발을 할 줄도 모르고, 그런데 지도를 만든다니.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인터뷰를 하는 홍윤희 님.
인터뷰를 하는 홍윤희 님.

그런데 제가 "이런 걸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얘기하면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세요.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무의 활동을 세상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기 위해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바깥에 많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아이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또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이런 걸 만들고 있구나, 이런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비장애인들도 많이 있구나, 그런 믿음을 세상에 주고 싶어요.

왜냐면 지민이도 밖에 나가면 도움을 많이 청해야 돼요. 아니면 다닐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만약 저 사람이 나를 안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면, 외출을 못 하겠죠. 그래서 세상에 너를 도와줄 사람이 많이 있다, 너의 편이 많이 있다는 인식을, 세상에 대한 신뢰를 주고 싶어요.

'무의'가 장애가 무의미해질 때까지 활동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하셨는데요. 장애가 무의미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홍윤희: 지민이는 뭘 거 같아? 너에게 장애가 무의미하다는 건 뭘까.

유지민: 장애가 무의미하다는 건, 장애라는 말 자체를 할 필요가 없는 미래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휠체어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는 거요. 그 자리에 딱 가면 안내판이 다 있고, 그걸 따라 가면 엘리베이터가 있고, 도움 버튼을 누르면 즉각 역무원이 안전판을 가지고 나온다든지.

굳이 장애인들을 위한 어떤 특별한 교통수단이 필요 없는 세상이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이죠.

홍윤희: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큰 장애물 같아요. 예를 들면 장애인 콜택시라는 '특별 교통수단'이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냥 일반 택시에 휠체어가 탈 방법은 없을까?

"휠체어는 항상 저 노란 택시에만 타는 거야."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항상 특수 학교에만 가야 해." "발달 장애인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다 시설에 가야 해."

그게 아니라 애초에 건축물을 지을 때부터, 교통수단을 만들 때부터 장애인의 존재를 고려해서 지었으면 그 뒤에 투쟁할 필요가 없는 거거든요.

유지민: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이 될 때까지 한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지금 세상은 장애가 의미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이렇게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목소리를 내고,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이렇게 한 가지 정체성으로만 정의되는 것이 부담이 될 때도 많아요. 물론 그렇게 의견을 대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이상 제가 저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때, 그냥 저라는 개인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장애인이라는 것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때.

궁극적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의가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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