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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민
에디터
·
2022-04-14
사랑해서 결혼합니다

제도적인 결혼은 '미래'지만, 결혼식은 '현실'이니까

[사랑해서 결혼합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릴지언정 안 되는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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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말

2년 차 웨딩플래너 한가람씨는 얼마 전 한 커플의 청첩장 제작을 도왔다. 늘 해오던 일이었지만 평소와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결혼식 당사자 한 명의 얼굴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해야 했다. 웹 버전 청첩장 링크가 어디서 어떻게 돌지 몰라서 준비한 일이었다. 그들은 게이 커플이고, 둘 중 한 신랑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람씨는 지난해부터 퀴어 커플의 결혼식을 진행해왔다. 그 과정을 물었더니 겪은 고충을 더 많이 들려주었다. '규격 외 청첩장'처럼 도식을 벗어나는 일이 더 많아서다. 아직은 그렇다. 하지만 어떻게든 진행된다. 결혼식 의사가 분명한 커플이 있고 이를 지원하는 웨딩플래너가 있다면.

모든 결혼식엔 긴 이야기가 있다. 나만의 결혼식뿐 아니라 남들의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직업적으로 숱한 후일담을 가지고 있는 가람씨를 만났다. 아직은 이성혼 위주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퀴어 웨딩 전문가가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게이 커플의 결혼식을 맡게 되었습니다

웨딩플래너 대부분이 '알음알음'으로 고객과 연결된다고 한다. 친구나 이전 고객이 주변에서 결혼식 계획을 접했을 때 다리를 놔주는 것이다. 한가람 웨딩플래너도 그렇게 고객풀을 채우던 중에 지난해 겨울 한 친구로부터 전에 없던 '제보'를 받았다. "트위터에서 결혼식 하고 싶어하는 게이 커플을 봤어. 너 소개해줘도 돼?"

2년 차 웨딩플래너인 가람씨는 사실 이런 연락을 여태 기다려왔다. 동성혼이 법제화된 서구권 사회에선 퀴어 결혼식이 보편적인 이벤트이고, 핑크머니 규모도 크다. 가람씨는 이러한 흐름을 한국 시장이 빠르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 길을 스스로 열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친구 덕분에 기다렸던 고객와 연결되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구매력을 말한다. 성소수자가 식당이나 클럽 등에 지출하는 비용, 성소수자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여러 가지 서비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2019년 전 세계적으로 성인 성소수자의 구매력을 3조 7천억 달러로 추산한 통계가 있다.

한가람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하늘색 남방을 입고 손에는 볼펜을 쥐고 있다.

웨딩플래너가 결혼 당사자와 계약 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웨딩홀이다. 고객이 요구한 예산대에 맞는 웨딩홀 리스트부터 주고, 그 안에서 고르는 것이 보편적인 과정이다. 가람씨는 퀴어 결혼식엔 추가적인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미리 움직였다. 똑같이 리스트를 만들되 그걸 고객에게 바로 건네지 않고 각각의 웨딩홀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성소수자 커플인데, 예식 진행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첫 관문부터 이렇게 거부가 많을 줄 몰랐다. 가람씨가 웨딩홀 업체에서 들은 말은 이랬다.

"남자 둘이라고요? 동반 결혼식인가요?" "그날 앞뒤로 결혼하는 신랑신부와 하객이 불편해할 수도 있어요." "주변에 대사관이 많아요. 보는 눈이 있어요." "몇 번 해봤는데, 이젠 안 하려고요."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서요. 회사에 말해보고 전화줄게요." "위에서 허락 안 해줄 거예요. 진행 안 될 것 같습니다."

수없이 문의한 끝에 마땅한 웨딩홀을 찾아 결국 예약을 마쳤지만, 혐오와 차단의 말을 직접 들으면서 가람씨는 한편으로 안도했다. '결혼 당사자 개인이 알아보고 진행했다면 더 힘들었겠네. 내가 들어서 다행이다.'

다음 관문은 스튜디오다. 가람씨는 웨딩홀 예약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참고 삼아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해 더 많은 스튜디오 정보를 확보했다. 사실 스튜디오 선정은 "연예인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정보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은 일"이라 그동안 가람씨 혼자 수월하게 해왔다. 하지만 성소수자 커플 촬영을 해본 곳이 많지는 않을 테니 더 많이 알아봐야 했다.

가람씨에 따르면 웨딩 전문 스튜디오도 웨딩홀과 마찬가지로 '공장식'이다. 한 스튜디오에서 한날한시에 여러 커플이 촬영을 진행한다.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타인을 신경 쓰지 않게끔 단독으로 촬영하고, 야외 촬영도 생략하고, 월요일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찾아야 했다. 월요일은 웨딩 업계 전반이 쉬는 날이다.

웨딩 화보 촬영도 어느 정도 매뉴얼을 따른다. 업체가 몇 가지 예시를 제시하면 고객은 그 안에서 촬영 스타일을 고른다. 약간의 변주는 있지만 배경이나 포즈 등이 합의된 촬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랑과 신랑의 화보 촬영은 아직 사례가 충분하지 않다. "표준에서 벗어나는 거니까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죠. 스튜디오 작가님에겐 어려울 수도, 성가실 수도 있는 일이에요."

시간이 좀 더 걸릴지언정 안 되는 일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웨딩홀 예약과 촬영이 끝났고, 예복도 맞췄다. 그들 커플은 올해 9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앞서 3월에 결혼식을 올린 수영과 지한 커플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은 식장에서 부케 두 개를 던졌다. 신부가 둘이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봤다. 반대로 가람씨가 진행 중인 게이 커플은 부케를 누가 들지, 부케가 이 결혼식에 꼭 필요한지를 고민 중이다.

돈, 돈, 돈

가람씨는 지금까지 약 열다섯 퀴어 커플과 상담을 했다. 그중 세 커플과 계약을 맺었다. 첫 상담에서 퀴어 커플들이 가장 많이 물은 것은 '프라이빗한 공간'과 예산이었다.

예산은 어떤 커플에게든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다. 누구든 초기에 예상한 금액보다 더 많이 쓴다. 하다보면 욕심이 생겨서 더 비싼 옵션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퀴어 커플도 똑같지만, 선택권이 더 좁다. 이것은 비용 문제로 연결된다. 그들 대다수가 원하는 '프라이빗한 공간'은 하루에 여러 결혼식을 돌릴 수 없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더 비싸다.

돈은 공간 말고 다른 데서도 많이 나간다. 그가 맡은 게이 커플은 복장에 돈을 많이 썼다. 신랑 둘 모두 맞춤 정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장을 대여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이 참에 맞춰서 오래 입기로 했다. 그러면 인당 100만원 이상을 써야 한다. 100만원은 웨딩 업계에서 맞춤 정장 최소가일뿐 실제로는 대개 그보다 높은 비용을 지출한다. 신부용 드레스 두 벌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보는 게 많아질수록 눈이 높아진다.

어떤 결혼식이든 돈을 쓰면서 시작하지만, 돈은 결국 돌고 돈다. 모든 결혼식엔 축의금이 따라오니까. 이 상황도 퀴어와 이성애자 커플은 같지 않다.

기본적으로 하객 수가 적어요. 큰돈을 쓰는 사람들은 집안의 어른들인데, 퀴어 결혼식엔 친척이 많이 안 와요. 하객 대부분이 또래 친구들이거든요.

그래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양가 부모의 한복이다. 듣자하니 그 이유가 개운치는 않다. 가람씨에 따르면 식장에서 혼주가 누구인지를 식별하기 편하도록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퀴어 결혼식엔 '어르신'이 많이 오지 않는다. 가람씨는 "부모님 한복 해드려야 할까요?" 하고 묻는 고객에게 부모 세대 하객이 얼마나 오는지를 되묻고는 차라리 그 돈으로 예쁜 옷을 사드리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고려할 게 많아지면 고민이 길어지고, 그러면 결정도 늦어진다. 퀴어 커플은 이성애자 커플에 비해 상담 후 계약에 이르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가람씨는 정보량 격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성애자들은 또래 친구들의 경험을 참고할 수 있을뿐더러 모르면 검색으로 답을 쉽게 찾는다. 아는 게 많을수록 웨딩플래너와의 상담 또한 원활해지지만, 퀴어 커플에겐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경험이다.

이러한 특성은 가람씨의 업무량 및 수입과 직결된다. 퀴어 커플의 결혼식은 상담도 훨씬 길고, 계약 후에도 업체와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하객 수가 많지 않아 큰 웨딩홀을 대관하지 않기에 거래 금액도 상대적으로 적다. 당분간은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가람씨는 생각한다. "저도 퀴어 웨딩에만 전념하고 싶죠. 하지만 이것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어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해요."

그러나 모든 게 다르다고만은 할 수 없다. 누구든 타인의 결혼식을 참고해 나만의 결혼식을 그린다. 가람씨는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을 상담하면서 예비 고객들의 경향을 발견했다. 그들 대다수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2020)를 쓴 김규진씨의 결혼식 사진을 참고해 이와 비슷한 진행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더 많이 결혼하려면

가람씨를 비롯한 웨딩플래너들은 1~2월이면 늘 바쁘다. 그간 막연했던 결혼 계획이 새해 다짐이 되는 시기라 상담이 폭주한다. 퀴어 커플의 문의도 마찬가지로 올초에 한참 몰렸다.

한가람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하늘색 남방을 입고 있다.

다만 게이 커플은 레즈비언 커플보다 상대적으로 상담 자체가 적다. 레즈비언 커플이 보다 구체적으로 결혼식을 고려하는 건, 가람씨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한국 사회에 사는 여성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결혼식이 여성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중요한 미래인지를 쭉 학습해왔으니까요."

그 결과 결혼식 시장은 시각적으로나 서비스 차원에서나 여성을 부각하고 우대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여성과 논의할 게 더 많으니 웨딩플래너 대부분이 신부와 더 많이 소통한다. 가람씨는 현재 친동생(남성)의 결혼식도 준비하고 있는데, 제수씨와 더 많이 연락하고 상의한다고 말한다.

결혼식을 둘러싼 오랜 인식과 관행은 동성 커플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한 레즈비언 커플이 상담하면서 가람씨에게 물었다. "신부 둘이서 각각 드레스랑 슈트를 입을 건데, 드레스 입을 신부가 키가 더 커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가람씨는 두 가지 답을 줬다. 자신은 업계에 있으면서 슈트를 입은 사람이 키가 더 작은 경우를 꽤 많이 봤고, 정 신경이 쓰인다면 키높이 구두를 알아보겠다고.

가람씨는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게이 커플을 아직 못 봤다. 애초에 상담 건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여성 고객 대다수가 결혼식을 낭만적으로 생각할 때, 남성들은 조금 더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웨딩플래너로서 주변의 게이 친구들에게 결혼식 의향을 꾸준히 물어온 가운데, 한 번은 이런 말이 돌아왔다. "어차피 혼인신고도 못 하는데 뭐하러 해?"

언젠가는 이런 체념이 사라지도록 가람씨는 열심히 물밑작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웨딩홀이나 스튜디오와 접촉할 일이 생기면 퀴어 결혼식에 대한 경험과 의향을 꼭 물어본다. 그러다 퀴어 고객이 생기면, 결혼 당사자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스튜디오의 작가들에게 '신랑님'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큰 신부님' '작은 신부님'이라고 불러달라고 사전에 요청한다.

또한 고객에게 파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한다. 웨딩계의 취소 위약금은 비싼 편이다. 아직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는 조건에, 양가의 부모가 모르는 일이라고 해도, 중간에 갈등이 생겨 결혼식을 엎는다면 누구에게든 큰 책임이 따라온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일하면서 희망도 본다. 아직 웨딩홀과 스튜디오는 설명할 게 많지만, 예물 업체는 쉽다. 웨딩 고객이 아니더라도 커플링 맞추러 온 퀴어 커플을 많이 봐서 그럴 것이라고 예상된다. 최근에는 거래처 스튜디오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얼마 전에 레즈비언 커플 촬영하고 갔어. 그거 가람씨가 맡은 거야?" 가람씨가 모르는 커플 이야기였다. 이런 말도 들었다. "드레스 두 벌이요? 15년 전에 그런 고객을 만난 적이 있어요."

이처럼 사례를 많이 접할수록 일이 순조로워진다. 주변에서 더 많은 퀴어를, 더 많은 퀴어의 결혼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밖에 없나 싶지만, 유명인들이 나설 때 효과가 더 강력해지겠죠. 당연히 제도 변화도 따라와야 하고요. 시민결합이든 생활동반자법이든 제도가 퀴어 커플을 보호해야 한다는 거예요."

변화를 기다리는 사람뿐 아니라 다가올 변화에 준비된 사람도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가람씨가 건넨 명함에는 카카오톡 아이콘과 함께 '프라이드웨딩'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와 결혼식 상담을 하고 싶다면 카카오톡에서 '프라이드웨딩'을 검색하면 된다는 뜻이다. 퀴어의 제도적인 결혼은 미래지만, 퀴어의 결혼식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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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
    취재, 작성
  • 진하
    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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