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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 이후 3년, 가해자는 실형을 받았다
에디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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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0
용화여고 스쿨미투

스쿨미투 이후 3년, 가해자는 실형을 받았다

용화여고 스쿨미투 당사자, 강한나 씨 이야기

페미니즘
성폭력
스쿨미투

에디터의 말

3년 전, 서울시 노원구 용화여자고등학교 학교 창문에 붙은 #With You #Me Too 포스트잇 기억하시나요? 학생들이 고발한 성희롱 가해 교사 A 씨가 유죄 판결을 받기까지는 3년이 걸렸어요.

  • 2018년 3월 15일 졸업생들로 결성된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 자체 설문조사
  • 4월 6일 스쿨미투 창문 포스트잇
  • 4월 10일 가해자 A 씨 고소
  • 8월 용화여고, 가해 교사 18명 징계
  • 12월 검찰, 가해자 A 씨 불기소(증거불충분)
  • 2019년 8월, 재수사 결정
  • 2020년 5월, 가해자 A 씨 기소 처분
  • 2021년 2월, 가해자 A 씨 1심 징역 1년 6개월 선고
  • 2021년 7월, 가해자 A 씨 항소심 징역 1년 6개월 선고
  • 7월 20일, 가해자 A 씨 항소심 결과에도 불복해 상고장 제출. 대법원에서 이 상고장을 기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최종심에서 다시 재판을 치뤄야 한다.

학내 성폭력은 단번에 뿌리 뽑히지 않는, 질긴 '전통' 이었어요. 용화여고 졸업생 강한나 씨는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이하 위원회) 소속으로 활동 중이에요. 학내 성폭력을 잔뿌리부터 하나둘 끊다가, 잠시 주저앉았다가, 다시 용기를 냈어요. 그리고 기어코 굵직한 몇 뿌리들을 뽑아냈어요. 강한나 씨가 스쿨미투 당사자로서 싸워 온 경험을 공유할게요.

2018년 4월 6일, 용화여자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WITH YOU' 문구를 붙이는 모습(ⓒ용화여고 페이스북)
2018년 4월 6일, 용화여자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WITH YOU' 문구를 붙이는 모습(ⓒ용화여고 페이스북)

어떻게 미투를 결심하셨어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가해자를 고발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국민신문고에 교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전화로 문의했죠. 그런데 해결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당시에는 피해 당사자들을 모으거나 사건 관련 자료를 많이 준비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다가 2018년에 서지현 검사님의 미투 운동을 보고 여기저기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예요. 그걸 보고 '우리 학교 졸업생들은 모두 똑같은 사람(가해자)을 떠올리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스무 살 이전에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환경이 있었나요?

우선 교사의 성폭력이 일상적이었으니까요. 가해자가 학교에 오래 근무한 사람이어서 수많은 피해 학생이 있었어요. 그런데도 학교 내에서 입지가 공고했어요.

학교 내에 그런 소문도 돌았어요. "예전에 한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해서 교사의 성추행을 항의했는데, 오히려 그 학생이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더라."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학생들에게는 공포감이 조성되는 말이잖아요.

교사들이 "나한테 잘 보여야 생활기록부 한 줄이라도 잘 써주지"라는 농담을 일상적으로 했거든요. 입시에 예민한 학생들이다 보니 그 말이 두려웠어요. 성폭력 항의가 받아들여지면 다행인데, 안 되면 성적에 손해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애들이 부모님에게도 말을 안 했어요. '혹시나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와서 일이 너무 커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지금 당장 대학 가야 하는데' 이런 생각도 했어요.

실제로 무시당하기도 했고요. 학기 끝나고 교사 평가를 할 때, '기타 사항'에 피해 사실을 적어도 묵인되는 거예요. 오히려 다음 해에 "교사 평가에 수업 관련된 내용 이외에는 적지 마라." 이런 교내 방송이 나왔어요. 그걸 적었던 학생 입장에서는 '아, 이 학교는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구나' 생각할 만하잖아요.

몇몇 선생님께 말해보기도 했어요." 너희 마음은 잘 알지만 도울 부분이 많이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공론화 이후에) 어떤 선생님은 "너희는 한솥밥 먹는 가족들한테 이러고 싶냐?"고 했어요. 학교 관계자와 교사가 친인척인 경우도 있었거든요.

용화여고 창문에 붙은 포스트잇 앞에서 용화여고 재학생들이 주먹을 쥔 모습 (ⓒ용화여고 페이스북)
용화여고 창문에 붙은 포스트잇 앞에서 용화여고 재학생들이 주먹을 쥔 모습 (ⓒ용화여고 페이스북)

위원회 활동을 결심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자연스러운 마음이었어요. 위원회 설문지에도 그렇게 썼어요. '위원회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저도 너무 하고 싶었다. 인터뷰에도 참여하고 싶다.'

스쿨미투 때 학교 안팎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잖아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전국적으로 이슈가 될 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위원회 안에서 '지금 상황이 우리가 바라던 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는 얘기가 나왔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연대하려고 하니까, 헷갈리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어요. '같은 학교 현장에 있는 분들도 아니고, 피해 당사자도 아닌데 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시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가장 힘들었던 시점은?

2018년도 중후반부터 번아웃(burn out)이 왔어요. 수사 기관이나 교육청이 스쿨미투 사건을 제대로 다룬 전례가 없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나 저희 피해 당사자들한테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거예요. 저희가 계속 고군분투해야 하는 거죠. 피해자를 모으고, 증언을 모으고, 수사에 협조하고, 징계를 요구하고, 언론에 대응하고...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위원회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는 일도 생기고요.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번아웃(burn out): 에너지를 소진했다는 의미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사건을 지원해 준 변호사분이 "불기소 처분 나면 재수사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지금까지 노력한 게 리셋(reset) 된 기분이었어요.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이 사건을 다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그즈음 인터뷰할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도 미투 하실 것 같으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지만 해야죠"라고 답했어요.

실제로 2018년 12월에 불기소 처분이 됐죠. 그렇게 고갈된 마음을 어떻게 견뎠나요.

불기소 결정이 난 뒤에, 위원회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를 했어요. "여기서 끝내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 같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는 더 엄두도 못 낼 거 같고, 그렇다면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 보자." 그래서 재수사를 요청했죠.

다음 과정은 사실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냥 또 법원에서 출석 요청이 와서 몇 번 가고, 뭐 하고, 그러다 보니까 기소가 됐다는 기억만 나요.

그래도 기소가 결정된 다음부터는 '이 사건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저희가 피해자를 모으지 않아도,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불러 모으는 거예요.

또 제가 증언하러 법정에 갔는데, 저한테 돈을 준다고 했을 때 엄청 이상했어요. '내가 "이 사건은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라고 말을 하는데 법원에서 돈을 준다고? 이제 정말 나라가 같이 해결해주려고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게 확 실감이 났어요.

우리나라는 '형사소송비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사 절차에 참여하는 증인에게 여비, 일당, 숙박료 등을 포함한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강한나 씨가 받은 금액은 5만 원 가량.

1심 재판에서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는데, 이 결과가 비교적 잘 나왔다는 의견도 있어요.

네. 다른 스쿨미투에 비해서는 결과가 잘 나왔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결과가 아주 못 나온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변호사분께서 "이번 형량은 항소심으로 넘어가면 집행유예로 경감될 수 있는 정도의 형량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2021년 7월 15일, 항소심 재판 결과에서도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하지만 5일 후인 7월 20일, 가해자 A 씨는 이 결과에도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법원에서 이 상고장을 기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최종심에서 다시 재판을 치뤄야 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가해자의 아동 청소년 관련 교육기관이나 장애인 보호시설에서의 취업 제한 기간이 5년이라는 사실이에요.

"다른 건 몰라도 취업 제한 기간만큼은 무기한이어야 한다"는 게 위원회의 공통된 의견이었거든요. 가해자가 20년 넘게 교사로 근속하면서 피해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거잖아요.

이번 1심 선고 난 피고인 말고도, 가해 교사로 지목된 사람들이 많아요. '다시는 교단에 서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은 용화여고 내에서 파면이나 해임 조치를 받는 것으로 그쳤거든요. 다른 교육 기관에서 일할 수도 있는 거죠. 잘못된 성적 가치관이 있는 분들인데 그런 걸 허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유죄 판결이 나지 않으면 그런 일을 제도적으로 제재할 수 없어요.

아직 끝이 아니네요.

1심 선고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얘기하는데 후련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 기자회견 끝나자마자 노원시민모임 중 한 분이 이러시는 거예요. "쌤, 이거 항소할 거죠? 가해자 쪽에서 무조건 항소할 거니까 우리도 해야 돼요." 그때 이렇게 답했어요.

아, 제가 너무 빨리 후련함을 느껴버렸네요.

다른 학교에서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한, 스쿨미투는 끝나지 않는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떤 남자 고등학교 학생분과 대화한 적이 있어요. 그분도 학교에 문제라고 느끼는 지점이 있는데, 남고의 경우같이 미투 운동할 사람이나 지지자들 모으는 것부터가 힘든 상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경험자로서 미투 운동을 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항상 "절대 혼자 미투하지 마라."고 해요. 저는 얼굴을 공개하고 활동했어요.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한 게 없고, 난 당당해.'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활동하다 보니 저는 이 사건의 진실을 알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당사자 아니면 모르는 고립감이나 소외감이 있거든요. 가족들도, 단짝 친구도 온전히 알 수 없어요.

그럴 때 같이 활동할 사람들이 절실해요. 지지해주는 분들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인터뷰도 같이 하고 회의도 하면서 정기적으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요.

스쿨미투 이후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사회 문제에 전반적으로 관심을 더 두게 됐어요. 어떤 사회 문제라도 깊게 파면 다른 문제들과도 연결됐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내 문제가 제일 급하니까 내 문제만 관심 가져줘" 이런 태도를 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고요. 환경문제도 그렇고, 페미니즘은 당연하고, 그 외 노동자의 권리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느껴요. 제가 영웅이 될 수 없는데 영웅이 되려고 하는 거 같아서요. 모든 걸 다 잘 해내려고 하는 완벽주의를 저 자신한테 요구하는 듯해요. 특히 가족들에게 그래요. 지금까지 집에서의 제 모습과 지금의 제 모습, 집 안에서와 밖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을 누군가 지적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우울감을 느껴요.

이제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해요, 일부러라도. 예전에는 코믹 영화 별로 안 봤거든요. 그냥 생각 없이 웃는 게 싫어서요. 그런데 요즘에는 좀 좋아졌어요. 그런 식으로 저의 탈출구도 찾아놨고요. 미투 활동 말고도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게 됐어요. 너무 모든 것에 무게를 두지 않으려고요.

얼마 전 인터뷰 때도 "미투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냐"는 질문을 받았거든요.

'두 개의 자아가 생기는 거 같다'고 대답했어요. 제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왔을 때 할 말들이 따로 있잖아요.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고요. 다른 피해 당사자분들한테도 앞에 나설 때 최대한 준비를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잘 모르겠어요. 노원시민모임 서정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는 스쿨미투에 대해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이야기할 책임이 있다."

미투 운동을 마쳤을 때, 어떤 세상을 상상하세요?

스쿨미투 운동에 대해 설명하는 강한나 씨
스쿨미투 운동에 대해 설명하는 강한나 씨

미투가 별나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업 내용을 성관계에 비유해 설명한 교사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성적수치심을 느꼈다고 신고했고, 경징계(감봉 및 견책)를 받았죠. 나중에 그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억울하게 느끼는 지점이 있으시더라고요. "내가 잘못한 거 있을 수 있다. 근데 내가 (실형을 받은) 저 가해자랑 같은 급이라고?"

그런데 또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나도 이런저런 상처를 받았지만, 그래도 미투 덕분에 학교 현장이 깨끗해진 것 같다." 저는 제도보다도 중요한 게 그런 사회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의 끝에서,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라는 마음이 커졌어요. 지금까지 그냥 시간만 흐른 게 아니고, 학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변하거나 유죄 판결이 나거나 하니까요. 그런 걸 볼 때 뿌듯함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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