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잘 모르겠어. 난 주변에서 장애인을 본 적이 없어서…" 멋쩍게 말하는 선량한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만납니다. '그러게, 왜 우리 주변에서 장애인을 만날 일은 이렇게 적을까?' 특히 중증장애인은 길에서 마주치기조차 어렵다고 느낍니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은 다들 어디 살고 있는 걸까요?
프리웰재단 이사장 김정하씨는 최근 향유의집이라는 중증장애인 시설의 이사장이 되었고, 이 시설에 살던 모든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도왔다고 해요. 그가 목격한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현실을 들어보았습니다.
탈시설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탈시설은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서 지역사회로 돌아가는 걸 의미해요. 그냥 시설만 나오면 사막에 내쳐지듯이 방치되는 게 아니라,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인간 보편의 개인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장애인, 하면 이웃사람의 이미지가 아니라 먼저 장애인 시설이 떠오르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 같아요.
시설이라고 하면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죠. 큰 건물이 있고, 복도가 있고, 양옆에 방, 방, 방, 쭉 늘어서 있고, 장애인들이 복도에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 제가 여태까지 본 장애인 시설의 실상이었어요.
시설을 운영하던 분들은 '탈(脫)시설'이라는 말에 안 좋은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어서 거부감을 보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탈시설이라는 용어에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어요. 여태까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시설이라는 구조 속에서 살게 하고, 그들의 삶을 방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이제 그것을 멈추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죠.
탈시설 이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무거운 얘기인데요. 2000년대 초반이었을 거예요. 당시 제가 일하던 단체에 강원도의 한 미신고 장애인시설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난다고 제보가 들어왔어요. 제보자는 특수학교 교사였는데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부모에 의해 시설에 가게 돼서, 잘 지내고 있는지 가봤더니, 몸이 너무 말랐고, 시설 환경도 나빠 보이고, 안에 못 들어가게 했다는 거죠.
그래서 조사를 하러 갔는데, 그 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참함 속에서 계셨어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청결부터 시작해서, 돌발 행동을 한다고 묶여 있기도 하고, 그 외진 산골의 담벼락 속에 갇혀서 단체로 생활하고 있는 거죠.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받았고,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잖아요. "내가 여기서 이런 처우를 받으며 살고 있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시설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누가 대리해서 외쳐주지 않으면, 이렇게 투명 인간처럼 취급되고 있는 삶이 있다는 걸 아무도 알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 시설의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발달장애가 있는 20대 여성분께서 제 운동화를 감춰 두셨더라고요. 가지 말라고.
저는 인권활동가라고 조사를 마치고 철문 밖으로 나오잖아요. 철문이 닫히고 나면, 그 여성분과 다른 많은 사람들은 또 그 안에서 생활하고요. 행정명령이 내려와서 시설이 닫힌다고 해도, 그때까지는 똑같이 살아야 하죠. 또 다른 시설로 가게 되면 달라지는 게 없고요.
'이 무형의 경계가, 저 사람과 나를 가르는 경계가 도대체 뭐지?'
너무...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잊지 말자. 철문 안에 있던 사람들을 잊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단체를 만들고 탈시설 운동에 깃발을 꽂은 거죠.
보통 많은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시설이 있고, 좋은 시설이 있는 거 아닌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저도 중고등학교 때는 정말 순진한 마음으로 장애인 시설 자원봉사 열심히 다니고 그랬어요. 장애인이니까 시설에 사는 게 당연하고, 나는 봉사만 다니면 되고.
장애인 인권활동을 하면서도 처음에는 정말 인권침해 문제가 있는 시설만 다루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보가 들어온 시설을 솎아내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처음에는 미신고 시설 사건이 하도 들어와서, '신고가 안 된 곳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똑같은 문제가 대형 법인시설에서도 일어나는 거예요. 종교 법인이든, 민간 법인이든, 개인 운영 사업자든 가리지 않고 인권침해, 비리, 성폭력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만 쫓아내면 장애인들의 삶이 바뀔 줄 알았더니, 아들이나 친척이 들어와서 또 비리, 학대를 저지르고요. 족벌 운영을 하면서 사유화한 시설이 많죠. 몇 년 해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더라고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시설의 집단 수용생활 자체가 가진 폭력성, 억압, 배제, 분리가 문제였던 거예요.
일단 사람이 많으면 규율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규율이 있으면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억압과 통제가 작용할 수밖에 없겠죠. 그 규율이 장애인들의 다양한 장애 양상과 정도를 모두 고려할 수 있을까요? 중증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이 그 규율을 이해하고 지킬 수 있을까요? 애초부터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결국 좋은 시설, 나쁜 시설이 있는 게 아니라 시설이라는 구조 자체가 인권침해를 낳을 수밖에 없고, 이걸 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외국 사례를 조사해보니까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960년대에 '대형 시설에 장애인을 수용하는 방식은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1970년대부터 국가가 탈시설 정책을 추진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2021년에 탈시설지원법을 논의하고 있으니 많이 늦은 거죠.
* 미국 연방정부는 1978년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Developmental Disabilities Assistance and Bill of Rights Act: DD Act)를 제정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각 주 정부 차원에서 법률이 제정되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는 '랜터만 발달장애서비스법'을 제정해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사항을 규정하고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했다. 호주에서는 정부가 커뮤니티 리빙 플랜(CLP)을 통해 성인 지적장애인의 주거 독립을 지원한다.
* 스웨덴, 미국, 영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1990년대를 전후로 장애인 인구대비 시설과 지역 사회 서비스의 비중이 역전되어, 인구 10만명 대비 지역사회 생활(community living)의 비중이 시설의 비중보다 높아지고 있으며, 점차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 (2018, 김미옥・정민아, 탈시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체계 모색 - 미국과 호주의 지원생활 경험을 중심으로)
*탈시설지원법 :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2020년 12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등 68인 발의. 모든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이 거주하는 시설의 인권침해 실태를 적극 조사하여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과 그 운영법인에 대해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향후 10년 내에 모든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 시설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장애인복지법 상 등록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3만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통계에는 정신장애요양시설, 노인요양시설, 노숙자 시설에서 사는 장애인의 수가 반영되지 않아요. 정신장애든, 발달장애든, 신체장애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거주시설이나 요양시설, 정신병원에 입소한 규모는 약 10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시설에서는 보통 어떤 하루를 보내나요?
2017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국 중증·정신장애인 요양시설 실태조사를 했어요. 의사 소통이 가능한 당사자 1500여명을 인터뷰했어요. 저도 조사원으로 전국 시설 75개소를 다녔는데요. 그때 "하루를 어떻게 보내세요?"라는 질문을 꼭 해요.
* 2017, 국가인권위원회, 전국 중증·정신장애인 요양시설 실태조사(링크)
그러면 대답이 보통 이렇죠. "휠체어에 앉아 있는데요." "텔레비전 보는데요."
가장 충격적인 답변은 하루는 이 벽 보고 누워 있다가, 다음 날은 너무 지겨워서 저 벽 보고 누워 있다는 말이었어요. 너무 가슴 아팠죠.
시설의 일과라는 게 아침에 기상하고, 직원들이 씻겨주고, 식사를 하고, 방마다 층마다 순서대로 목욕하는 팀은 목욕을 하고, 그런 일정이 없는 팀은 TV를 보거나 가만히 있다가, 점심 되면 점심 먹고, 간식 먹고, 다시 저녁 먹고. 그럼 하루가 끝나는 거거든요. 보통 저녁 시간도 오후 4시 반, 5시고요.
그나마 시설 위치가 좋아서 조금이라도 어딘가 나갈 곳이 있거나, 신체장애인이라면 나가서 돌아다닐 수도 있겠죠. 그런데 시설에는 발달장애인이 많아요. 또 근린시설이 없는 아주 외진 곳에 있는 시설이라면 갈 곳이 없고요. 그러면 그저 그 층, 그 건물 안에서만 거의 생활하는 거죠.
또 시설 조사 항목 중에 "직원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나요? 당신은 직원을 뭐라고 부르나요?" 이런 항목도 있어요. 옛날 시설에서는 나이에 상관 없이 직원을 엄마라고 부르거나, 직원이 생활하는 장애인들을 "야, 누구야"하고 부르는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께서 그 질문을 듣고 놀라시면서 "직원들은 날 부르지 않는데요?"라고 대답하시는 거예요. 내 이름 세 글자로 호명될 일 자체가 없었던 거죠. 당시에 시설에 사는 분들 인터뷰를 1~2시간씩 했는데, "시설 입소한 뒤 20년 만에 누군가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본 게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이번에 문을 닫는 향유의집을 운영하는 프리웰재단 이사장을 맡고 계신데요. 어떻게 이사장이 된 건가요?
향유의집의 원래 이름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었어요. 1985년 만들어진 사회복지법인 석암재단 산하의 장애인 시설이에요. 37년간 유지되었고, 120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생활하던 대형 시설이에요.
그런데 2007년에 이곳에서 석암재단의 비리와 인권침해가 폭로됐어요. 이사장을 비롯하여 운영 요직에 있던 그 가족들이 법의 처벌을 받았고요.
석암재단은 프리웰재단으로 이름을 바꿨고, 이사회의 구성도 장애인 인권 활동가나 사회복지 교수 등이 공공이사로 바뀌었어요. 저 역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사로 참여하다가 2019년에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공공이사회에서 네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요. 인권, 탈시설, 자립생활, 사회통합이에요. 오랫동안 향유의집에 갇혀 있었던 분들이 시설을 나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탈시설을 추진하기로 했어요.
이미 저희가 돕기 전부터 향유의집에 살던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탈시설 투쟁을 하고 있었어요. 2008년에 한규선씨를 시작으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설에 사느니 노숙이 낫다'며 노숙 투쟁을 하신 '마로니에 8인'이 탈시설했습니다.
2019년 서울시가 지원주택 제도라는 새로운 주거 복지 모델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탈시설에 박차를 가했어요. 총 76명이 지원주택으로 이사를 가셨는데요. 2021년 3월 9일자로 마지막 분까지 다 이사를 갔습니다. 이제 향유의집은 텅 비어 있어요. 4월 30일자로 시설 폐지 신고를 했고요.
비어 있는 시설을 보면 어떠세요?
이제 향유의집보다 훨씬 좋은 곳에 살고 계시는 장애인분들을 생각하면 행복하고 보람 있죠. 그런데 직원들의 고용 승계 같은 경우는 한계가 있었어요. 저는 100% 고용 승계를 바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체 인원의 38%만 이뤄졌거든요. 나머지 분들은 권고사직이나 해고를 당한 거죠. 그래서 빈 공간을 바라보면 반은 기쁘고, 반은 괴로워요.
직원분들에게는 자기 생계가 걸린 문제라, 여기서 장애인들하고 평생 정년 때까지 일하면 좋겠는데 '왜 굳이 탈시설을 해야 하지?' 생각하는 분도 있었을 거예요. 제가 정말 간곡하게 말씀도 드리고, 양해도 많이 구했지만, 그래도 동의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겠죠.
그런데 여기 사는 장애인들에게는 그날 하루하루가 자기의 삶이고 일상이잖아요. 무기력하고 억압적인 하루하루가 누군가의 직장 유지 때문에 유지될 순 없다고 생각해요. 권고사직 된 직원들도 탈시설한 분들이 잘 사는 걸 보면서 사회복지하는 입장에서 '그래, 이게 맞는 거지'라고 받아들여주지 않았을까 믿고 싶습니다.
탈시설 이후, 당사자 분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너무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맨날 시설 문 앞에 추우나 더우나 나와 있는 분이셨어요. 왜 그렇게 밖에 나와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혹시 가족들이 버리고 갔기 때문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지원주택 입주 후에도 주차장이나 1층에 나와 있겠거니 했는데, 이제 전혀 안 나오세요. 생각해보면 여기는 한 층에 30명씩 살았잖아요. 누구는 소리 지르고, 누구는 울고… 편안한 날이 없겠죠. 이제 조용한 자기만의 공간이 있으니까 안 나오는 게 아닐까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남다르겠어요.
그럼요. 울컥하죠. 내가 뼈빠진 보람이 있구나. (웃음) 이런 모습을 정말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데 보여줄 길이 없네!
흔히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정책'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잖아요. 그중에 탈시설 정책만큼 어떤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정책이 또 있을까요?
제가 20년 넘게 활동했는데, 마약 같아요. 누가 자립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는 게. 혹은 그분이 힘들다고 울기도 하고, 주변 사람과 삐그덕거리는 일로 하소연하러 오기도 하고... 근데 그게 다 일상이거든요. 일반 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이잖아요. 그렇게 사실 때 보람을 느끼죠.
향유의집 이름에는 '집'이라는 말이 들어가는데요.
많은 시설 이름이 그래요. 무슨무슨 원, 무슨무슨 집, 사랑, 믿음, 소망…
그렇지만 집은 아니죠. 집이라고 하려면 내 애인도 올 수 있어야 되고, 반려동물도 키울 수 있고, 창문만 잘 닫으면 내가 목욕한 뒤에 옷 벗고 돌아다녀도 문제가 안 되죠. 하지만 시설에서는 한 공간에 몇십명씩 사니까 그런 게 가능하지 않죠.
장애 인권 활동을 할 때 이동권 투쟁도 하고, 교육권 투쟁도 하는데요. 대부분 예산의 문제예요. 반대하는 세력이 딱히 없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지 말아라!" 이런 분들이 누가 있겠어요. 돈만 있으면야.
그런데 탈시설은 예산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인식의 문제가 강해요.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당신과 똑같이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하면 "장애인인데? 장애인은 시설에 사는 게 당연하지 않아?" 이런 인식을 만나는 거죠.
장애인이 사회에 나와 살면 더 위험하다는 안전·보호의 논리, 장애인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는 무능력의 논리,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재고 따지는 논리… "장애인은 그냥 데리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예산이 준비되어 있어도 이런 인식이 탈시설 정책의 저해 요인 같아요. 시설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은 이런 사회 인식에 기대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이나 사회 통합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요즘 몇 가지 논란이 되는 문제가, 탈시설하고 싶다고 스스로 손 들고 얘기하지 않는 장애인들을 왜 탈시설을 시키려고 하냐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중증치매노인, 아동, 중증발달장애인 같은 분들은 나의 권리를 스스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분들이에요. 주로 대형 수용보호시설에 살고 있는 분들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욕구를 표현하지 않았으니 시설에 사는 게 당연하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국민이 탈시설을 함께 지지해주셔야 해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같이 살아갈 권리는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고,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