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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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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7

국내 다섯 번째로 큰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일

불법 합성, 성희롱 댓글, 신상 털이.... 놀이가 된 디지털 성착취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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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에디터의 말: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대여섯 사람이 공개된 장소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오늘은 누굴 때릴까? 저기 안경 낀 사람? 그 뒤에 선글라스 낀 사람? 투표로 정하자." 그들은 길 가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누굴 때릴까요? 어떤 무기로 때릴까요?' 대다수는 그들을 무시한다. 일부는 재미있다고 웃으며 투표한다. 결과에 따라 누군가를 공격한다. 피해자는 그저 공격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된다.

충격적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당장 경찰이 출동하고 범죄 모의는 저지되겠지?

사실은 비슷한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성희롱, 성폭력을 가한다. 모두에게 공개된 대규모 웹사이트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캐내어, '공개 투표' 방식으로 누구를 어떻게 공격할지 정한다. 마치 게임처럼.

텔레그램 N번방(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지 4년째. 언론과 세상이 디지털 성범죄를 잊어버린 것 같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끈질기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리셋(ReSet)은 조주빈과 문형욱이 검거된 이후에도 디지털 성범죄를 감시하고 경찰의 수사를 돕는다.

리셋은 디지털 성범죄가 점점 더 일상화되고, 온라인 괴롭힘의 수단이 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맞서야 할까? 언제까지 싸워야 할까?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리셋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범죄가 게임이고 장난이야? 일상화된 범죄들

리셋은 2019년 12월 5일, 분노한 익명의 여성들이 결성한 단체다. 텔레그램 성착취 단체방에 잠입해 실태를 파악하고 신고하는 일로 시작해, 경찰 수사를 돕고 입법 제안을 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성착취 단체 채팅방을 운영하던 가해자 일부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리셋은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N번방과 비슷한 범죄는 지금도 일어난다. 게다가 더욱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리셋은 여러 온라인 현장에서 '놀이'처럼, 그리고 '게임'처럼 발생하는 디지털 성폭력의 현주소를 고발한다.

어두운 방에 나란히 앉아 인터뷰에 응답하고 있는 두 여성의 실루엣이 보인다.
익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디지털 성범죄 대응 단체 '리셋'.

Q. N번방 이후에도 리셋이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셋: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 중 일부가 잡혔다고 모든 일이 일단락되고, 디지털 성범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는 일상화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니' 하고 분개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저렇게 할 수 있구나' 하며 새로운 범죄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텔레그램 'N번방' 개설자 문형욱은 징역 34년형,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징역 42년형이 확정됐다. 경찰청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가 생긴 2020년 3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N번방' 관련 피의자 804명, '박사방' 관련 피의자 222명을 검거했다. 자세한 통계는 여기서 볼 수 있다.

Q. 그 양상은?

리셋: N번방 사건의 현장인 텔레그램이나 혹은 주로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난다고 생각되는 다크웹(일반적인 검색 엔진이나 브라우저로는 찾거나 방문할 수 없는 웹사이트)은 특정한 어플을 설치하거나 특수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 어느 정도 '진입 장벽'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는 사이트에서도 디지털 성범죄가 아주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Q.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는 사이트에서 성범죄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 범죄 현장, 얼마나 가까이에 있을까?

리셋: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가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그 웹주소 링크가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다. 그럼 그걸 본 유저들끼리 댓글로 해당 라이브 방송에 들어가서 '욕을 하자' '이러이러한 성적 모욕을 가하자' 한다. 사실상 범죄 모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피해자분께 이를 전달하여 결국 방송을 종료한 일이 있다.

누가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범죄 표적이 될 거라고 생각할까. 그냥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었고 그걸 사용한 것뿐인데, 이런 식으로 누구나 드나드는 곳에서 여성을 괴롭히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테러나 다름없다.

Q. 디시인사이드는 취미생활이나 '덕질'처럼 각각의 목적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상당히 많은 대형 커뮤니티 아닌가?

리셋: 그것이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디시인사이드가 어떤 커뮤니티인가. 국내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사이트를 집계해보면 다음, 카카오, 네이버, 유튜브 등이 상위를 차지한다. 그다음이 디시인사이드다.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사용자가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이렇게 큰 사이트에서 성착취물까지 유포된다. 텔레그램이나 다크웹에서 퍼진 것들이 그대로 올라온다. 추천을 받으면 더 올려주겠다며 추천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대선 후보들이 표를 구걸했다.

Q. 이렇게 범죄 행위의 문턱이 낮아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리셋: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예시가 있다. 최근 가해자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게임 형식을 빌려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멀티 엔딩'이 주어진 게임이 있지 않나. 우리가 선택을 하면 캐릭터의 행동이 바뀌고 나아가 주변 환경이 바뀌고, 이로써 해피엔딩이나 베드엔딩을 보게 되는. 그 쉬운 게임의 형식을 누군가를 성적으로 괴롭히거나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쓰고, 의도한 결과를 보면서 효용감을 느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특정 피해자를 대상으로 투표용 선택지를 여러 개 만든다. '이런 유형의 성적 모욕을 가하자' '이런 유형의 성폭력을 가하자' 등 가해의 상황을 선택지로 만들어놓고, 가담한 이들에게 가장 높은 투표수를 받은 행위를 실행한다.

가장 많이 득표한 것이 '이 피해자가 나한테 나체 사진을 보내게 하는 것'이라면 나체 사진과 피해자 얼굴을 합성해서 '제가 얻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성착취물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른바 '보상'이다.

Q. '범죄'가 아니라 '장난'으로 인식한다는 뜻일까?

리셋: 그렇다. 이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걸 누구나 다 아는데, 그게 거꾸로 목적이 되어버렸다.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치니까 '하지 말아야겠다'가 아니라 '그러니까 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과정이 정말 장난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차차 '이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자' 아니면 '이제 반응이 없네, 시시해'로 이어진다. 피해자가 SNS를 닫거나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면 다른 피해자를 찾아 떠난다. 몰려가서 한 인간을 폭격하고, 다른 데로 가서 또 초토화로 만들고…

그런 짓을 하면서 얄팍하게나마 이유를 붙이는 경우가 있지 않나. 성적인 호기심으로 그랬다든지, 취업 스트레스 때문이라든지 하는. 여기선 이런 변명조차 없다. 소위 '건수'라고 생각하고 즐기는 문화다. 빌미가 있고 계기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개인정보를 유포하고 그걸 바탕으로 SNS에 몰려가서 악성 댓글을 달거나 명예훼손을 한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피해자의 주변인까지도 가해 대상으로 삼고.

최근 쿠팡이츠의 개발 페이지에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넣지 않았나. 그걸 본 남초 사이트의 반응이 어땠을까. '미친 거 아니야?'가 아니다. '그러니까 일할 때 '야동' 보지 말랬잖아' '와 용감하다' 이러고 만다. 사고방식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칭찬인 줄 알겠지만.

2022년 1월 19일, 쿠팡이츠 앱의 테스트 페이지에 여성을 성기에 비유해 비하하고,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해 논란을 빚었다. 쿠팡이츠는 "외부 협력사가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냥 '남자애들 다 그렇지'라고 말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건데 그게 바로 문제다. 범죄 행위가 일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를 감싸주거나 장난이라고 치부한다는 것이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해를 일으키나?

리셋: 가까운 사람한테도 가해를 한다. 예를 들어 한 가해자가 명절에 자기 친척 동생이 왔다면서 불법 촬영을 해서 올린다. 그렇게 업로드되면 '몇 살이야?' '어느 학교 다녀?' '남친은 있어?'로 시작해서 온갖 걸 물어보고, '휴대폰 번호는 이거래' '여기로 문자 보내자'로 확장된다.

처음에는 사진 같은 개인정보를 유포해서 '어떻게 생겼다'로 시작해 성적인 모욕을 가한다. 이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을 불법으로 합성하고, 단체로 우르르 달려가서 성적인 모욕을 하고,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로 이어진다. 이게 어떤 프로젝트라도 되는 것처럼 타깃을 발견하면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그래서 본인들이 목표로 삼은 것을 달성하고자 한다.

위험하거나 수사 대상이 될 것 같으면 그만두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타깃을 찾고, '야 얘가 이번 타깃이래' 하면서 똑같은 짓을 또 한다. 이게 다 디시인사이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 사고방식이 디지털 성범죄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나 같은 반, 같은 학원에서 말 한 번 못 해본 여학생을 불법 촬영해 성적 모욕을 가하는데, 피해자가 우리와 같이 동등한 사람이며, 이 사람이 어떤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하니까 이러는 것이다. 대상을 객체, 물건으로 보고 자기 마음대로 찍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왜 범죄가 아니란 말인가, 애매한 법 조항의 사이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온라인상에서 누군가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한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 범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을까? 어떻게 엄벌해야 이 범죄가 근절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컴퓨터 모니터로 익명 인터넷 사이트 디씨인사이드의 글 목록을 보고 있다.

Q.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하다면 제재할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 디시인사이드처럼 큰 커뮤니티에는 사이트 내부에 신고 기능이 있지 않나?

리셋: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디지털 성착취물 유포 현장을 보고 불편해한다. 이것이 범죄 행위라는 걸 알고, 신고를 하거나 하다못해 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이트 모니터링을 해보면 대부분의 반응은 이렇다. '나 못 봤는데. 올려줘.'

그러면 가해자는 '추천수 몇 개를 넘으면 또 올리겠다' '다음 시리즈를 올리겠다' '더 수위 높은 걸 올리겠다'라고 반응한다. 아니면 '언제 올려서 바로 삭제할 테니까 놓쳤다고 울지 말고 그때 다운받아라' 한다.

Q. 가해자들은 이런 짓을 하고도 안 잡힌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근거 있는 자부심'인가?

리셋: 가끔은 이런 걸 다운받으면 잡혀가느냐는 질문도 올라온다. 범죄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따라오는 반응을 보면 '괜찮아, 나 VPN(Virtual Private Networks, 외부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통신할 목적으로 쓰는 사설 통신망) 켜고 우회했으니까 안 잡혀' '로그인하지 않았고, 이 사이트에 내 회원 정보 없으니까 안 잡힐 거야' 하는 식으로 법망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들은 이렇게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미숙한 사람이 보이면 친절하게 사용법을 알려준다. '이렇게 올리면 잡혀가니까 이런 앱을 쓰면 되고, 이 앱은 유료인데 어떤 점이 좋고, 무료 앱도 있는데 조금 위험하지만 네가 돈 쓰기 싫으면 써라' 하는 식으로.

Q. 모든 디지털 성범죄 현장이 검거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경범죄로 인식되기 때문일까?

리셋: 그보다는 입법 공백 상태라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종류의 디지털 성범죄는 대부분 텍스트, 즉 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밖에 없다.

현재 처벌 방식으로는 해당 피해자들이 지원을 받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리셋은 법무부를 향해 언어로 가해지는 온라인 성적 괴롭힘에 대한 처벌 조항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Q. 관련 범죄에 대해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할까?

리셋: 범죄학에선 처벌이 범죄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입장이 있다. 그런데 처벌이 약하거나 없으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

어린 가해자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소년법 적용으로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가해자 측은 "미래가 창창한 젊은 친구들이 뭘 몰라서 그랬다고, 혈기 왕성한 나이라서 그랬다"라고 변호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다는 걸 당연하게 두고 거기서 고민을 해야 한다. 엄벌에 처해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사회적 악순환을 끊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변화에 국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지금보다 많은 예산과 인력을 써야 한다.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물렁하게나마 법이 가해자를 처벌한다면, 우리에게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지 모른다. 피해자와 연대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한 사람이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두 손으로 잡고 있다.

Q. 이런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리셋: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 행위를 봤을 때 "이건 아니다" "이건 잘못됐어" 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예로, 디지털 성범죄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는데, 관심을 가지고 공유를 많이 하면 좋겠다. 이것만으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Q. 리셋이 그동안 해온 일도 있다. 우리가 여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리셋: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 가운데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엄벌 릴레이 탄원'이 있다. 조주빈을 대상으로 시민들의 엄벌 탄원서를 받기 시작했던 것을 계기로 하여, 현재는 시민들에게 제보받은 다른 가해자들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탄원서를 다 인쇄해서 이고 지고 간다. 그 무게를 느낄 때마다 '이 많은 시민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이 되길 바라는구나' 느끼곤 했다. 그런데 탄원서 양이 줄었다. 관심이 옅어지는 게 탄원서의 무게로 느껴진다.

최근 가수 정바비 불법 촬영 사건에 대해서도 판사가 '좋은 음악을 만들어 달라'며 가해자 편의를 봐주는 발언을 했을 때 모두가 분노하지 않았나. 그 분노가 일시적인 반응으로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댓글을 쓰거나 청원 공유를 하고 우리가 진행하는 릴레이 탄원에 참여할 수 있다.

기사 아래의 댓글란을 보면 말도 안 되는 글이 최상단에 있을 때가 있지 않나. 끽해야 '좋아요' 100개, 1000개다. 인터넷 사용 인구를 생각하면 진짜 소수인데 그 소수 의견이 최상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표 의견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 댓글이 싫고 관련 기사를 읽는 게 지칠 수도 있지만, 그때 한 명이더라도 더 '싫어요'를 누르고 댓글 신고도 하면 좋겠다. 이런 걸 유도하면 누군가는 조직적인 댓글 알바라고 비난한다. 그런 음해를 받아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디지털 성범죄를 끝장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점을 알려주면 좋겠다.

Q. 댓글이 달라진다고 도움이 될까?

리셋: 형사소송 재판 현장의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 둘뿐이다. 피해자는 낄 수 없다. 증인 정도로 재판에 참여하는 게 전부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탄원서를 내거나, 판결이나 공판에 대한 기사가 나왔을 때 댓글로 의견 표시를 하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가해자들은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집단화된 범죄를 저지른다. 우리도 그런 방법으로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특별한 게 없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집안일 하고 휴대폰 좀 보다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이런 범죄가 있었네' '그렇구나'만 할 게 아니라 관련 사실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한다든가 아니면 댓글 하나라도 쓰면 좋겠다.

리셋이 꼴보기 싫어? 사라져줄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면

리셋의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지속해온 것일까. 언제쯤 그만둘 수 있는 것일까. 그 고충에 대해 물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라는 트위터 계정이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에 함께 해 주실 분을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화면.
리셋의 트위터 계정.

Q. 하면 할수록 인간에게 환멸을 느낄 만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리셋: 구성원 저마다 다를 텐데, 개인적으로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를 보면서 분노로 임하고 있다. 누군가는 중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Q. 매일매일 절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무기력하거나 무뎌진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리셋: 그런 무력감이나 좌절감을 느낀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 실제로 사회가 변하지는 않더라도, 가해자가 잡히거나 처벌받으면 우리가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여기서 또 힘을 얻어서 활동을 한다.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디지털 성범죄 관련 기사를 모아서 SNS로 내보내고 있다. 어느 정도는 관성으로 하지만,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더 나쁜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다.

Q. 리셋이 지금 하는 일, 평범한 일반인이 해야 하는 일일까. 수사 기관이 해야 하는 일이지 않나.

리셋: 맞다. 국가가 모니터링을 하고 채증(증거 수집)해서 범죄자를 검거하고 처벌되는 사회라면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지만,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경 이슈에 빗대서 설명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플로깅(plogging,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활동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고,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한테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심각하다면 기업과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게 안 되고 있으니까 개개인의 선의가 모여 플로깅이라는 행위를 만들어낸 것 아닌가.

우린 눈앞에 디지털 성범죄가 보이니까 처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니터링하고, 채증해서 경찰에 전달하고 있다. 국가가 기능을 제대로 하면 리셋은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싫다면,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함께해주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사라질 것이다.

Q. 국가 기관이 변하면 리셋 스스로 '없어져주겠다'는 뜻일까.

리셋: 2020년 리셋은 기획재정부에서 표창을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예산 책정을 위해 노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인데, 그때 다이어리에 이렇게 써놨다. "표창을 받았어도 기쁘지 않다." 표창을 받았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셋은 그동안 국가 기관과 같이 달려왔다. 국가가 혼자서 달릴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우리는 빠져줄 것이다. 지금은 같이 반창고 붙이면서 달려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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