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지금까지 이겨왔고 앞으로도 이길 것이며 이길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의 저자 리베카 솔닛이 2017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전한 말이다.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을 대중화하고, 꾸준히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써온 그가 다시 한번 한국의 독자들을 만났다.
그는 최근 에세이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2022)을 펴냈다. 집을 떠난 19세부터 지난 40여년을 되돌아보면서 불안정했던 젊은 시절의 그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선호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놓았다. "(여성가족부는) 정부 부처로서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말하는 새 정부가 곧 탄생한다.
리베카 솔닛은 여전히 페미니즘의 승리를 전망할까?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3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인 리베카 솔닛과 줌(Zoom)으로 진행한 온라인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Q. 한국의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남성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고, 여성의 투표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취급되었습니다. 결국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한 반페미니즘 정책은 물론 환경과 노동 등에서 보수적인 정책을 내세운 후보가 1%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미국 대선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때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좌절을 이겨냈나요?
리베카 솔닛: 저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처럼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못하고 순종하고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생각했었죠.
그러나 실제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2017년 1월 21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500만명이 모였는데, 큰 도시뿐만 아니라 알래스카, 몬타나, 아이다호, 애리조나 같은 농촌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도 시위가 벌어졌어요. 굉장한 일이었죠. 우리는 상당한 규모의 저항 세력이 되었고, 이런 조직화를 거쳐 2018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중요한 정치적 승리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반트럼프 시위는 주로 여성들, 특히 중년 여성들에 의해 조직된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움직임은 기후위기 운동, 흑인 인권 운동("Black Lives Matter"),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항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했어요.
일련의 과정이 쉽거나 재미있지는 않았죠.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이 오는 것을 막았고, 희망을 계속 살려나갔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요. 트럼프 정권 초기에 제가 사이버 보안 전문가에게 간 적이 있어요.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싶었기 때문에 '안전'하고 싶었거든요. 그가 말하길, ISIS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온라인으로 사람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하지만, 사실 그 일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집단은 극우파라는 거예요. 특히 젊은 남성들을 적극 모집하고 있다고요. 한국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그 결과 굉장히 조직적인 프로파간다가 온라인을 통해 퍼졌습니다.
남성들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그날부터 여성을 혐오하기로 한 게 아니죠. 백인들이 갑자기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게 아니고요. 매우 치밀하게 조작된 시도가 그 배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의 젊은 남성들 역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생각을 형성하고 심지어 조종되는 경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시도가 자주 있었습니다.
Q. 트럼프 시대와 한국의 현실이 겹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반페미니즘 행보가 온라인 공간과 실생활에서의 성차별, 성폭력, 여성혐오와 어떤 관련을 갖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리베카 솔닛: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인종차별주의가 확산된 과정과 비슷해 보입니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주의에는 더 이상 유색인종에 대한 억압이나 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백인이 더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데 유용했죠. 생각을 멈추고, 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멈추고, 극우 세력으로 동원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지난 5년간 미국에서 인종차별주의와 반인종차별주의가 동시에 증가했습니다.
미국의 사례가 증명하는 것은, 전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거나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미국도 정말 끔찍하고 미친 사람들을 많이 겪었어요. 트럼프가 그 우두머리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할 이슈가 있고, 함께 싸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승리할 수 있고요.
미국에서는 첫 흑인이자 첫 남아시아 여성 부통령 카말라 해리스가 당선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민주당에서 매우 진보적인 인물이 많이 등장했어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유색인이 의회에 진입했습니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여성과 페미니스트에게는 지금이 끔찍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저는 좀 더 멀리 보려고 합니다. 페미니즘이 지난 5년간 어땠는지만 생각할 게 아니라, 지난 50년은 어땠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지난 50년간 여성의 지위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바뀌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 이름조차 몰랐던 것을 변화시켜왔습니다.
가부장제는 몇천년을 지속해왔기 때문에, 이를 50년 안에 완전히 바꾸기를 기대할 순 없습니다. 좀 더 길게 봅시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굉장히 많은 것을 바꿨고, 앞으로도 50년, 60년, 심지어 600년간 계속해서 바꿔나갈 것입니다.
그들은 법을 바꿀 수도 있고, 페미니스트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떠오른 사상을 소멸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Q. 신간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은 전작과 어떻게 다른가요?
리베카 솔닛: 저는 30년 동안 페미니즘과 여성이 겪는 폭력에 대해 썼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중요한 것이 있다는 감각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죽이려 하고, 해치려 하고, 비하하려 하는 세상에 산다는 건 어떤 건지 쓰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나의 특징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젠더를 이유로요. 이런 상황이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쓰고 싶었어요. 그것이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성들은 언제든지 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있고 위협 받는 일이 흔한데, 이런 상황이 '정상적'이어서 마치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우산을 들고 다니듯이 항상 대비해야 하지만, 정작 사회 변혁은 요구되지 않는 세계를 살아갑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저 자신에 대해 쓰기를 선택했습니다. 저의 경험이 정말 평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끔찍한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위협, 희롱, 스토킹을 겪었으며 누가 저에게 침을 뱉거나 저를 만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에 대해 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마주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강간당하지 않았고,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취급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그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Q. 이 책의 원제는 ❮비존재에 대한 회상(Recollections of My Nonexistence)❯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존재'라는 개념은 무엇인가요?
리베카 솔닛: '비존재'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은 여성이었을 때 미국의 길거리는 위협과 희롱을 맞닥뜨리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제 행동을 바꾸라는 말을 들었어요. 머리를 짧게 잘라라, 남성처럼 말해라, 총을 사라, 집에 있어라, 절대 혼자서 집을 나서지 마라, 다른 장소로 혼자 이동하지 마라, 남자를 화나게 할 만한 행동을 하지 마라, 섹시하게 보이지 마라…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고 없애라는 요구를 받았던 것입니다. 제 존재를 드러내면 누군가가 저를 죽일 수 있으니까, 안전하고 싶으면 존재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런 요구를 받는 여성들의 상황을 '비존재'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Q. 남성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책에도 새로운 남성성을 언급하셨는데요. 남성들이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 있을까요? 남성이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며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요?
리베카 솔닛: 정말 복잡한 문제입니다. 저는 여성이 남성을 '고쳐줘야만' 하는 위치에 두고 싶지 않아요. 그건 여성에게 '돌봄' 역할을 기대하는 거죠.
동시에 그런 생각도 해요. 분명히 전통적인 이성애자 남성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고요. 지금 제 뒤에 조카의 사진이 있는데요. 이 남자아이는 5살이 되기 전까지 분홍색, 빨간색, 보라색, 주황색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미국에서 분홍색은 여자아이들의 색깔이라 남자아이들은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거든요. 조카는 5살이 채 안 돼서 그걸 알았던 거예요.
남성성이라는 게 특정 색깔을 좋아하면 안 된다든가, 꽃을 좋아하면 안 된다든가, 특정한 감정을 느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제한하고 포기하고 기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 대신 많은 권력을 얻기도 하죠. 굉장히 군인적인 정체성이라고 느껴요.
점점 더 많은 미국 이성애자 남성들도 마음을 열고, 좀 더 많이 표현하고, 육아에서 역할을 다하고, 스스로의 취약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몇몇은 분홍색을 좋아할지도 모르죠. 어쩌면 페미니즘에서도 남성들이 얻어갈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해방되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그들을 가르치는 게 여성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또 하나, 세상에는 상대적으로 처벌에 집중하는 페미니즘이 있습니다. 물론 많은 남성들이 여성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이런 남성들은 사법체계를 통해 벌을 받고 감옥에 가야 하죠. 그러나 처벌로만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혁명이란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죠. 혁명은 부모가 어떻게 아이들을 기를 것인지, 학교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우리가 세상에 어떤 동화를 만들어놓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법은 있지만 성차별은 없는, 새로운 동화를 세상에 더 늘리고 싶어서요.
Q. 작가님께서 이해하시는 범위 안에서 한국 젠더 갈등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해결을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한국의 일부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인가요? (❮조선일보❯의 질문)
리베카 솔닛: 페미니즘의 목표는 여성을 포함시키려는 것입니다. 남성은 이미 너무나 많은 영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남성이 포함되지 않은 특정한 영역이 있죠. 예를 들면 가족의 돌봄, 육아, 감정 같은 영역이요. 하지만 여성에게 스스로를 해방시키면서 동시에 남성도 해방시키라는 요구를 하는 건 우려스럽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돌보라는 요구를 받았고, 실제로 남성을 먼저 돌봐왔습니다. 어쩌면 남성들 스스로 뭘 원하는지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갈등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말이죠. 저는 자본주의적인 '희소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희망, 자유, 정의, 자신감 같은 것이 마치 금이나 음식처럼 한정된 자원이라고 믿는 거죠. 내가 많이 가지면 상대는 적게 가지는 물건이라고요. 그러나 실제로 이런 비물질적인 것들은 양적 경계가 없죠.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공포, 패배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자극하고 이용하는 건 정말 쉬워요. 이런 메타포를 바꿔야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많이 가질수록 남성이 어떤 식으로든 덜 가지게 될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거부하고, 여성이 원하는 모든 걸 가지면 남성 역시 이득을 본다는 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남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고 싶어요.
한국의 득표 결과를 봤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60대 이상의 모든 유권자는 보수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40대 남성의 경우 보다 진보적인 후보에게 투표했어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 듣고 싶어요.
또 젊은 남성들이 어쩌다가 여성에게 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는지도 듣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경제가 불평등해지고 삶이 어려워질수록 젊은 백인 남성들이 유색인종을 비난하고 탓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는데요. 한국도 비슷한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여성과 아무 상관없는, 포괄적이고 세계적인 경제적 문제에 대해 여성을 비난하도록 부추겨진 건 아닌지요.
Q. 한국은 코로나 이후에 여성 실업률이 남성에 비해 현저하게 올랐고, 동시에 20대 여성 자살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비존재'라는 상황이 여성의 정신 건강, 나아가 목숨을 위협할 때, 어떻게 서로를 지킬 수 있을까요?
리베카 솔닛: 좋은 질문이자 어려운 질문입니다. 미국에서도 팬데믹의 짐이 특히 여성에게 지워졌는데요. 가사와 보육 노동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현실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상당히 기이하고 심각하게 편향적이었는데요. 모든 것을 여성에게 일어난 일로만 묘사했을 뿐, 어떻게 남성이 자신의 짐을 여성에게 떠넘기는지는 절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이 직업을 포기해야 했다거나 사업을 접어야 했다거나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많아요. 하지만 저는 "이 남성은 절대 설거지를 하지 않고 자기 아이를 돌보지 않고 모든 가사 노동을 아내에게 전담시켰기 때문에 커리어가 잘 나가고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요.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회적 네트워크・커뮤니티・가족이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양극단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외롭고 고립되고 우울한 반면, 어떤 사람들은 가족과 아이와 24시간 함께해야 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죠. 특히 여성들은 더 그랬고요.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좋은 예시가 있습니다. 중국계 퍼포먼스 예술가 크리스티나 웡과 아시안계 미국인 여성들이 '반재봉협회(Anti Sowing Society)'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요. 약자로는 ASS, 영어로 '엉덩이'가 되어서 웃기죠.
이 커뮤니티는 800명 규모로 성장했어요. 집에서 만든 마스크 30만개를 취약계층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훌륭한 우정이 만들어졌어요. 팬데믹 속에서 커뮤니티를 통해 타인에게 관대함과 돌봄을 전하면서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된 좋은 예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커뮤니티를 필요로 하고, 사회 속에 있어야 해요.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슬퍼요. 그런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듣고, 무엇 때문에 절망적이고 외롭고 불행하고 고독한지 들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더 많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시기에 이런 네트워크를 만들어둬야 해요. 가장 나쁜 시기에 그 네트워크가 필요할 테니까요.
Q.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남겨주신다면?
리베카 솔닛: 오랫동안 저는 폭력에 대해 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목소리에 대해 쓰고 있었습니다. 누가 목소리를 갖고 있는지, 누가 그걸 듣고 있는지,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누가 이 세상에서 목소리의 신뢰와 가치를 결정하는지.
저는 운 좋게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는 목소리를 갖게 되었는데요. 목소리를 가졌다면 써야겠죠? 충분히 들리지 않는 다른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키우고, 더 많은 목소리를 위한 장소를 만드는 데에 쓰고 싶어요.
또 저는 희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어요. 그건 긍정주의와는 다릅니다.
긍정주의와 비관주의는 동전의 양면이죠. 긍정주의는 무조건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믿고, 비관주의는 무조건 모든 것이 잘못될 거라고 믿습니다. 둘 다 행동하지 않으려는 핑계죠.
저에게 희망이란, 미래가 굉장히 불확실하고 알 수 없고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거예요. 나아가 현재 우리가 하는 행동이 다른 미래를 써나가고,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바꿀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 뭔가 시도해야 할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다는 걸 아는 거죠.
적들은 언제나 우리가 희망을 잃고 좌절하고 포기하길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집이 세고,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미국인 활동가 마리암 카바(Mariam Kaba)의 말로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요. "희망은 단련이다(Hope is a discip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