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페이스 홈으로
홈으로 가기
  • 주제별 보기
에디터 민
에디터
·
2022-03-11
결혼 안 한 엄마들

가족을 원했다, 결혼도 남편도 아니고

[결혼 안 한 엄마들] 아빠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가족다양성
비혼
입양
입양가족

들어가며

결혼했다고 다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결혼이 없었어도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선택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가족의 범위는 얼마나 명확할까.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사전부터 열어봤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족을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집단"이라고 썼다. '주로'라는 표현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부부 중심 가족이 더 많겠지만, 부부가 아니어도 가족을 만들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반영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의식도 궁금해서 찾아봤다. 캠브리지 사전은 가족(family)을 "서로 관련이 있는 사람의 그룹, 특히 부모와 자녀"라고 정의한다. 한국의 가족 개념이 "주로" 부부에서 시작한다면, 서구권에서는 양육 관계를 가족 개념의 핵심으로 보는 것 같다.

무엇이 더 올바르다거나 정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고정된 의미를 얻고 싶지도 않다. 가족에 대한 해석이 지금보다 열려 있는 게 더 좋겠다. 그리고 진실은 사전에만 있지 않다. 가족의 개념이 더 확장되거나 전환되는 순간은 실제 현실에 있다. 우리는 그런 생생한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일단 '엄마'부터 찾아다녔다. 엄마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 문화 속에서 존재하며, 아이가 있어야 엄마라고 불린다. 그런 엄마로 살지만 결혼은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엄마에게는 출산이 없었다. 이런 길을 열어 가족의 범위를 좀 더 넓히는 엄마들이 있다.

비혼이고, 아이 둘을 키웁니다

출판 편집자로 20년 넘게 일한 백지선씨를 전 동료는 이렇게 평가한다. "그 누구보다 조직생활을 오래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회사에서 승승장구했다." 지난해에는 커리어 전환이 있었다. 그간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출판사 '또다른우주'를 창업했다.

올해로 지선씨의 첫째 아이는 열세 살, 둘째는 열 살이다. 몇 해 전 둘이 같이 쓰라고 이층침대를 사줬지만 놀이 공간이 된 지 오래다. 그들 가족은 한 침대를 쓴다.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에 '흥칫뿡'으로 일관하다가도 잠들기 전이면 이불을 더듬어 지선씨의 손을 꼭 잡는다.

경력 관리도, 재산 관리도, 아이와의 관계까지도 무탈한 이 충만한 삶에는 처음부터 결혼이 없었고 배우자도 없었다. 지선씨는 결혼 제도 밖의 엄마다.

오른편에 철제 프레임으로 만든 2층 침대가 있다. 1층 공간에는 흰색 커튼이 달려 있고, 2층에는 여러 가지 침구가 있다. 1층과 2층은 사다리로 연결된다.
가족이 쓰는 이층침대. 지선씨가 두 아이의 꿈나라를 위해 장만했지만 놀이 공간이 된 지 오래라고 말한다. 그들 가족은 한 침대를 쓴다.
지선씨의 아이가 가슴에 책을 얹고 그물침대에 누워 있다. 침대 뒤편에는 거실의 베란다 너머로 바깥의 풍경이 보인다.
지선씨의 아이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

지선씨가 출판사를 열고 낸 첫 책의 제목은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2022)다. 그가 직접 썼다. 배우자 없이 2010년, 2013년 1세 여자아이 둘을 입양한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결혼의 성공률보다는 입양의 성공률이 훨씬 더 높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선씨는 약 15년 전 입양법이 개정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6년 말부터 해당 법에서 양친(입양 부모)의 조건으로 '혼인 중일 것'이라는 내용이 삭제되었다. 이를 통해 2007년부터 독신자(배우자 없는 사람)도 입양 기관을 통해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다만 입양 기관마다 차이가 있어 비혼자에게는 보다 까다로운 심사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이 개정법을 토대로 지선씨는 "서류만 보고" 첫째 아이를 입양했다.

이렇게 법이 바뀌기 전까지 그는 생각했다. '한국 국적이 필요한 외국인과 위장 결혼을 해서 아이를 입양했다가 이혼할까.'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아이를 원했다. 직장인이 되어 휴가를 통해 행복한 여행을 경험한 어느 날,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와 이 순간을 함께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는 않았다.

양육자 대부분이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키우는 것이 더 힘들다고들 한다. 지선씨는 반대로 생각했다. 출산 전후에는 일을 쉬어야 하는데, 그 시기에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게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궁근종수술을 마친 시기였고,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자신이나 아이에게 건강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지선씨는 만 36세에 첫 번째 입양을 했다.

반면 양육은 그보다는 수월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공공기관이 연결해주는 아이돌보미나 원가족이랑 육아를 분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출산을 하면 최소 3개월 이상은 쉬어야 하죠. 내가 아프고 아이가 아프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을 테니까 '현실적인 선택’을 한 거죠."

검정색 셔츠와 회색 코트를 입고 진주 목걸이를 한 지선씨가 살짝 웃고 있다.
지난해 출판사를 창업하고 첫 책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출간한 백지선씨. 독신자로서 두 아이를 입양한 자신의 경험담을 썼다.
지선씨가 자신의 책을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온 페이지를 펼쳐서 웃고 있다.
지선씨가 자신의 책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와 자신의 사진이 나온 페이지를 열었다.

'현실적인' 지선씨는 처음부터 둘을 입양하기로 했다. 부모가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형제자매라고 생각해서다. 그의 부모는 지선씨를 포함해 넷을 낳았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운이 나빠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들은 서로를 연민했고 그 힘으로 어린 시절을 버텼다." 예상대로 그들은 지선씨의 입양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오빠와 여동생이 입양 절차에 필요한 가족 상담에 참여했다.

입양 기관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양친가정조사신청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기관에 제출하면 절차가 시작된다. 그런 뒤에 기관에서 양친의 가정을 조사한 다음 아이와 결연을 맺는다. 이어서 각종 서류를 가정법원에 제출하면 절차가 완료된다.

지선씨도 이 과정을 책에 썼다. "신분과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들 외에 범죄경력회보서, 약물중독과 알코올중독 검사를 포함한 건강진단서, 재산 내역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제출했다. 독신자라 경제력이 중요하다고 해서 부동산과 예금은 물론 연금저축, 청약예금, 보험 가입 내용까지 탈탈 털어 제출했다."

첫째는 서류를 통해서만 입양이 결정되었다. 반면 둘째는 입양 과정에서 자주 만났다. 예비 엄마와 아이의 만남을 입양 기관 활동가들은 '선을 본다'고 표현했다. "선을 볼 때마다" 지선씨는 첫째를 데리고 나갔다. 이 과정에서 첫째는 곧 동생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세 살 차이 나는 동생이 입양 절차를 거쳐 집으로 올 것이며, 자신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입양가족이라서 겪게 되는 고충도 물론 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자 '차이'를 교육해야 할 일이 생겼다. 책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외가와 친가의 개념이 없어서 뒤늦게 삼촌이 사실은 외삼촌이고 숙모는 외숙모고, 할머니는 외할머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런 명칭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더 많은 양육자가 필요해

"옆집 사람도 우리가 입양가정이라는 걸 몰라요. 오래 관찰한 사람만이 아빠가 없는 가정이라는 걸 아는 정도?"

내가 만난 지선씨는 타인의 낡은 시선에 정말로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선씨는 입양에 대한 편견을 진작 경험했다. '그런' 시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선씨는 어머니 모르게 입양을 진행했다. 책에는 이 갈등의 시간이 상세하게 나온다. "어머니는 입양 사실을 알게 되자 당장 돌려주라고 펄펄 뛰었다." 지선씨는 법으로 응수했다. "나는 출생신고를 했으므로 아이를 버리면 내가 경찰에 잡혀간다고 얘기했다."

어머니의 저항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첫째를 입양하고 나서도 줄곧 결혼해서 아이의 아빠를 만들어주라고 했다." 결국 지선씨가 승리했다. "둘째를 입양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였는지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지선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주변을 관찰하면서 결혼이 여성에게 별 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여성의 결혼 생활이 좌우되고, 나아가 사회적 ・ 경제적 지위까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실패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자식들에게 꼭 결혼하라고 했을까?

지선씨는 연애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사귄 남자들은 모두 선량한 편이었지만, 같은 길을 동행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어쩌다 마주친 인생길에서 서로 잠시 힘이 되어주면 좋지만, 억지로 여정을 바꾸면 인생이 고달파진다."

이런 오랜 생각에 정보가 더해졌다. 그는 지역 사회가 제공하는 육아 복지 정책을 두루 살펴보고,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어 입양을 결정했다. 제도는 계속해서 변하지만, "누구나 쓰는 스마트폰 덕분에" 다 따라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학교에 갈 나이가 됐을 땐 여성가족부가 제공한 아이돌봄서비스를 활용했다. 아이돌보미가 오후 다섯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아이를 봤다. 필요할 때마다 몇 시간씩 추가로 더 쓰기도 했다. 둘째 아이가 입학할 무렵에는 근무 조건을 바꿨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활용해 업무 시간을 줄였다. 쌓은 경력만큼 많이 주어진 연차도 매년 탈탈 털어서 썼다.

검정색 셔츠에 회색 코트를 입은 지선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독신자로서 두 아이를 입양한 지선씨. 그는 아이와 함께하는 가정을 원했지만 결혼을 원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다고 해도 아이는 혼자 키울 수 없다. 제도가 돌보미와 어린이집을 통해 지원해도 육아는 벅찬 일이다. 더구나 양육자가 직장생활을 하는 한부모가정이라면 더 많은 난관을 예상하기 마련인데, 지선씨는 이 또한 편견이라고 본다.

"육아가 문제가 아니라, 독박 육아가 문제예요. 아이는 누구나 키울 수 있어요. 다만 한 사람만이 키울 수는 없어요. 직장 다니는 남편이 아무리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도 늦게 퇴근하면 똑같은 육아를 한다고 볼 수 없죠. 늘 혼자 키우게 되니까 문제인 거예요."

지선씨는 힘들게나마 이 문제를 돌파했다. 돌봄 노동을 나눌 수 있는 그의 형제자매와 가까운 곳으로 몇 차례 이사를 했다. 사실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힘이 컸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마음도 차차 변했다. 그가 두 아이를 구립 어린이집에 오전 일곱 시 반에 맡기고 출근하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저녁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려와 돌봤다.

저 키울 때랑 다르더라고요. 더 늙어가면서 성미도 누그러졌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게 된 거죠.

아이들을 통해 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지선씨는 실감했다. 여성에게 아이를 키우는 데 더 필요한 존재는 배우자가 아니라 마치 엄마처럼 양육 노동을 함께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는 책을 낸 뒤에 독자의 리뷰를 보면서도 실감하는 것이다. 지선씨는 책에 한부모가정이 아닌 양부모가정 여성이 더 많이 공감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 남편보다 친정엄마의 손이 더 절실했던 사람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책이 바뀌고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선씨는 말한다.

"윤석열 후보가 그랬죠. 재택근무하는 부모를 지원하겠다고. 일을 하면서 아이도 보게 '해준다'는 건데, 그럼 동료들이 싫어하죠. 육아휴직을 대개 여성이 쓰듯, 현재 상황에서는 이런 제도가 생겨도 여성이 훨씬 더 많이 쓰게 되겠죠. 그런 정책이 여성을 더 차별하게 만들어요. 여성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할 게 아니라 남자가 쓰게 만들어야 돼요. 누구에게나 일과 가정 생활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끔요."

"성평등 정책을 여성가족부가 많이 만들죠. 근데 기업이 여가부를 무서워하나요? 산업부나 중소벤처기업부처럼 기업이랑 밀착한 기관에서 해야 돼요.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얼마나 썼나, 여성 임원 비율이 얼마나 되나, 이런 걸로 기업 평가를 하고 세제나 지원 혜택을 줘야 돼요. 그래야 기업이 꼼짝 못 하죠."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2022년 1월 23일 최대 3년까지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육아 재택제도'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근로자가 일정 기간 육아 재택 근무를 선택하고 이를 허용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다.

검정색 셔츠와 회색 코트를 입고 진주 목걸이를 한 지선씨가 살짝 웃고 있다.
지선씨는 한부모가족과 양부모가족의 구분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양육은 모든 가정에게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우리 모두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가라고 생각한다.

지선씨의 가정은 제도적으로 입양가정이자 한부모가정으로 분류되지만, 그 사실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가 그는 계속 묻는다. 그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질문은 낡은 시선에 대한 대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다.

대책을 찾으려면 육아 노동의 구조를 봐야 한다고 지선씨는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부모가 하나든 둘이든 육아 노동량은 다를 게 별로 없다. 남성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정이 여전히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핵가족이라 일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아이를 돌볼 어른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그가 진단하는 양육 문제의 원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시간조사'(2019)에 이를 살펴볼 만한 항목이 있다. '기혼자의 성별 일평균 가사노동시간' 항목에 따르면 2019년 여성이 가족 돌봄에 쓰는 평균 노동 시간은 44분, 남성은 16분이다. 가정관리를 포함한 가사노동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여성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225분, 남성은 64분이다.

"한 달에 200~300만 원 벌 수 있는 일자리는 많아요. 400~500만 원짜리는 드무니까 결혼한 부부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죠.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한 명이 그만둬요. 대부분 여자가 그만두죠. 한 사람의 수입으로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드니까 결국 아이를 안 낳는 거죠. 그게 또 저출산으로 연결되는 거고… 악순환이에요."

물론 엄마가 육아 때문에 일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시간제로 일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죠. 이 사회가 일을 잘하고 싶어하는 여성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아요.

202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이다. 우리는 아이를 새로운 가족으로 좀처럼 들이려 하지 않는다. 대개 육아 부담과 경제적 문제를 예측하고 내리는 결정일 것이다.

지선씨의 경험은 이 문제에 대한 몇 가지 해답을 제시한다. 아이는 여러 사람이 키워야 한다.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고, 더 많은 어른 가족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사회가 돌봄 품앗이를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주양육자가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를 '낳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돌봄은 아이한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멀지 않은 곳에 아픈 가족이 있고 노인이 있다.

아이 없는 삶, 그게 정말 선택일까?

어떤 이의 말과 글은 내 삶과 생각을 통째로 돌아보게 만든다. 지선씨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을 때 내가 그랬다.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도 조금은 그랬다. 지선씨는 이렇게도 썼다. "(첫 조카가 생겼을 때) 절반은 내 자식이라고 느꼈다. 그들을 봐서라도 똑바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정말 그랬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출산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 엄마 같은 엄마로 살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 같은 가족이 또 있어야 할 이유를 몰랐다. 결혼 후 수년이 지나도록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나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줄 만한 어른이 못 된다고 봤다. 시간이든 돈이든 기회든 얻을 것보다 포기해야 할 것부터 헤아려왔으니까.

아이가 생기는 미래를 막연하게나마 그려봤을 때도 그랬다. 엄마가 된 친구들은 늘 지쳐 보였는데, 그렇게 삶이 변하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 '나만' 하게 될 일이라고 생각해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같이 하는 당연한 돌봄보다 여성 혼자서 감당하는 숨 막히는 사연을 더 많이 접해왔으니까.

그런데 요새는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삶이 대단치는 않지만 그래도 슬픔 말고도 기쁨과 행복을 알고, 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그때 하고자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언제나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가 누리고 사는 것도 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가정 안팎에서 더 나은 감정과 더 나은 역할, 더 나은 조건을 스스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이 있고, 내 몸을 쓰지 않아도 입양이나 위탁을 통해 제도적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나는 한 인간을 새로운 가족으로 만들 수 있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그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왔다.

나는 지선씨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고민을 구체적으로 나눌 사람을 마침내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원가족에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가족을 원했고 또 얻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커리어도 지켰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기대했고 실감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주말에 아이들과 깔깔대고 노닥거리다가 미리 세워둔 계획을 하나도 못 지켰음을 깨달은 저녁 무렵, 문득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문장에 마음이 흔들린 나는 지선씨에게 물었다. 나도 이 행복이 무엇인지 안다. 이 미래를 아이와 함께 만들어볼 수도 있었다. 나한텐 왜 그런 선택이 어려웠을까. 지선씨는 그게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연의 욕구를 억누른 것이네요. 내가 할 수 있는데 어려울까봐 안 하는 것, 그걸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나는 묻기 전부터 지선씨가 '그럼 너도 한번 낳아봐' 같은 말로 내 고민을 축소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생각을 나눴고 곧바로 원하는 답을 얻었다. 관점을 바꿔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성인이 아닌 사람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더 넓게 생각해볼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검정색 셔츠와 회색 코트를 입고 진주 목걸이를 한 지선씨가 왼손을 가슴 높이로 들고 있다.
백지선씨가 닷페이스 에디터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지선씨는 이런 고민이 우리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사람은 영원히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없고, 우리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며, 돌봄은 아이가 생겼을 때만이 아니라 모두가 평생 주고받아야 할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는 입양을 통해 그 노동의 현장에 기꺼이 뛰어들었고, 제도와 가족을 통해 손을 나눠 자신의 일까지 지켰다.

"개인이 자유롭게 사는 건 좋아요. 그런데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시기를 따져보면 20~60세예요. 그 중간중간 몸이 아플 수도 있죠. 우린 항상 돌봄을 필요로 해요. 나만 받을 수도 없는 상호작용이고요."

어느샌가 우리가 나누는 말 속에 입양과 출산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비혼이든 미혼이든 결혼을 둘러싼 가족 형태 구분도 같이 사라졌다. 삶에 진짜로 필요한 것만 남았다. 함께하면서 서로를 돌보는 사람이다. 그건 우리를 만든 존재이자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하는 존재다.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면!

만든 사람들

  • 민
    취재, 작성
  • 조아현
    조아현
    사진

1/0
결혼 안 한 엄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