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내가 솔직히 쫄아서 송금한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업소로 또 오면 네 배때기에 구멍내줄 테니 얼마든지 와라."
구본창 대표님이 매일 받는 살벌한 문자
— 배드파더스 (@2018_7_18) November 16, 2021
코로나로 인한 지역봉쇄로 코피노맘이 직장을 잃어 아이들이 굶고 있는 상황. pic.twitter.com/XLqK6AmMsn
웹사이트 배드파더스의 책임자 구본창 씨가 어느 아이 아빠에게 양육비 송금을 요청했다가 받은 문자다. 쌀이 떨어져 굶는 코피노 자식을 챙기라고 말했다가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 아이는 아팠다. 양육비뿐 아니라 병원비까지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구본창 씨는 배드파더스의 '방패막이'였다. 2018년 문을 연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안 주는 아빠의 신상을 공개하는 일을 3년 3개월 하고 사라졌다.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육비 이행법)이 시행되면서 운영을 이어갈 명분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문을 닫은 것이다.
이제는 정부 기관인 여성가족부가 양육비 이행 서비스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단을 공개한다. 법이 생겼으니 양육비 안 주는 무책임한 부모가 사라졌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구본창 씨는 이 법이 시행된 지 몇 달 지나 협박 문자를 받았다. 버젓이 법이 있는데도 "마음이 바뀌어서" 송금하지 않겠다며 살해 협박을 한다.
구 씨가 해온 일은 법을 바꾼 일인 동시에, 한편으로 법과 계속 싸워야 하는 일이다. 그는 몇 년간 명예 훼손 재판의 당사자였고, 2021년 12월 2심에서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때로는 법이 아닌 몸과 힘으로 겨뤄야 했다. 살해 협박 문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체 공격이 여러 차례 있었고, 다친 적도 있다. 그의 아랫니는 다 임플란트다. 참고로 그는 유도 7단이다.
사실 배드파더스에는 구 씨 이외에 여섯 명의 활동가가 더 있다. 배드파더스를 만든 사람들인데, 한 번도 언론에 존재를 드러낸 적이 없다.
이유가 어렵지 않게 짐작되긴 한다. 구 씨가 받는 문자만 봐도 답이 나온다.
여태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일까. 저런 문자까지 받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다면 문제가 얼마나 절박했던 것일까. 그들은 여태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왔을까. 그런데 언론에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은 이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 것일까.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웹사이트 배드파더스는 문을 닫았지만 트위터 계정은 아직 살아 있다. 구본창 씨가 받은 협박 문자도 여기에서 발견했고, 그것은 1만 건이 리트윗되었다. 타임라인을 눈으로 훑으니 계정주가 이른바 '트위터 화법'을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어쩐지 구씨 이외의 다른 활동가가 이를 담당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몇 가지 질문을 안고 만남을 청했다.
그렇게 해서 연결된 배드파더스의 일원은 김민지(가명) 씨다. 그는 배드파더스의 홍보 담당으로 통한다.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배드파더스와 관련한 청원이나 탄원이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글을 작성한다. 이렇게 해서 온라인상의 참여를 독려하는 일을 맡고 있다.
취재에는 응했지만, '마스크 착용샷'만 허용한 김민지 씨에게 이 가명은 '82년생 김지영' 같은 것이다.
"제 실명을 검색하면 딱 저밖에 안 나올걸요? 제 본명, 네 글자거든요. 저는 지금 20대 후반인데, 저랑 동갑인 여성이 가장 많이 쓰는 이름이 김민지예요. 어릴 때 다닌 유치원에서 민지가 네 명이었어요. 전에는 다른 이름을 썼어요. 마찬가지로 흔한 이름으로요. 그래야 안전하니까요."
그런 가명이 필요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2014년 민지 씨는 구본창 씨의 개인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때는 구본창 씨가 배드파더스의 전신인 '코피노 아빠 찾기'를 운영하던 시기다. 코피노 아빠 찾기는 현재 50대 후반인 구 씨가 은퇴 후 필리핀으로 떠났다가 현지에서 코피노의 실상을 알고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웹사이트로, 구 씨는 이때 개인 블로그에 사이트 운영 뒷이야기를 쓰곤 했다.
민지 씨는 구 씨의 개인 블로그를 1년쯤 구독하다가 한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필리핀 여성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구 씨에게 쪽지를 보내 후원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구쌤'(민지 씨는 구본창 씨를 이렇게 부른다)이 쓴 글을 보니까 한국 돈으로 생활비 8만 원만 꾸준히 지급받으면 양육비 소송을 할 필리핀 여성이 없대요. 얼마 안 되는 그 돈을 안 주는 아빠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렇게 해서 민지 씨는 리아(가명)와 결연을 맺었다. 필리핀 여성 리아는 약 20년 전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충청남도 논산으로 와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첫째를 낳은 뒤 둘째를 임신했을 때 한국 남성은 몽골인 내혼녀를 들였고, 리아와 아이에게 손찌검을 했다. 리아는 도망치듯 고향으로 떠났다.
"리아의 삶에 대해선 잘 몰라요. 연락하면 부담스러울까 봐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요. 그냥 아이들이 쑥쑥 크고 있다는 것만 알아요. 얼마 전에 제 신발 사면서 똑같은 것 270mm짜리를 보냈거든요."
매달 리아에게 하는 후원을 계기로 민지 씨는 구 씨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가 구 씨가 몇 가지 일을 요청하면 민지 씨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부탁을 들어줬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하는 일로, "그저 부모님이 자식한테 부탁하는 것"과 비슷했다.
지금이야 양육비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지만, 배드파더스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관련 소식이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코피노 문제는 더 드물었다. 그 얼마 안 되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구 씨는 민지 씨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끔 여기저기 퍼뜨려달라 했다.
2018년 여름에는 구 씨로부터 이런 부탁을 받았다. 웹사이트 배드파더스가 문을 열기 보름 전이었다.
"누가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구쌤이 만든 게 아니에요. 여성단체랑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일하던 사람들 대여섯 명이 모여서 양육비 안 주는 아빠 신상 공개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다 여자고 싱글맘이니까 무섭다고, 구쌤한테 방패막이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대요. 그때 구쌤이 저한테 부탁했어요. 사이트를 홍보할 젊은 친구가 필요하니까 같이 활동하자고요. 그게 배드파더스였어요."
배드파더스의 창단 멤버는 총 여섯 명이다. 여기에 합류한 민지 씨는 2018년부터 필요한 글을 쓰고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일을 맡았다. 따라서 여섯 멤버는 민지 씨의 존재를 알고 한 일을 알지만, 정작 민지 씨는 그들의 얼굴을 모른다. 왜 그런 거리 유지가 필요할까?
"필리핀에선 양육비 소송을 걸면, 소송을 취하하라고 협박하려고 청부 업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밀린 양육비 지급하는 것보다 그게 더 싸게 먹혀요."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구본창 씨는 코피노 문제를 고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 뒤에 나타난 배드파더스는 한국의 제도 안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양육비를 체납한 사람들을 고발했다. 무엇을 감수하고 시작한 일이었을까.
"필리핀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에 있는 싱글맘도 위협을 받아요. 구쌤이 받는 문자를 봐요.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거예요."
배드파더스를 시작한 구성원 대부분이 중년 여성이었다. 다들 직장이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다. 일터와 아이들을 위해 구성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켰다. 서로의 존재를 묻지 않으며 익명성을 유지했고, 외부 활동은 구 씨만 하기로 했다. 민지 씨는 배드파더스에 합류하면서 전화 응대 업무를 자처했지만 구 씨로부터 바로 거절당했다. 여자가 전화를 받으면 가해자가 더 날뛸 거라면서 직접 하겠다고 했다.
"구쌤은 옛날 사람이라서(웃음) 위험한 일로부터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요. 이런 과보호가 맨박스(가부장제하에서 '남성다울 것'을 강요받는 억압)라는 걸 알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 맨박스 덕분에 우리가 지금까지 안전할 수 있었거든요. 우린 이런 얘길 자주 해요. 배드파더스를 대표하는 사람이 여자였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서로를 지킨 끝에 구성원 모두가 다치지 않았고 관련 법까지 생겼지만, 민지 씨는 이것이 '여성'을 강조하지 않아서 거둔 성과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네 자식한테 그럴 수 있어'로 세상이 이해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공분을 얻어내고 법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입법되기까지 20년 걸렸는데, 양육비 이행법은 2년 걸렸어요. 좀 아쉽긴 해요. 저는 이게 '정상 가족'을 유지하려는 가부장제 문제와 여성 양육자의 피해를 고발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성의 피해보다 아동의 피해를 강조했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된 거죠."
민지 씨는 이런 말을 진작부터 하고 싶었다. 다만 기회가 없었다. 방패 역할은 구 씨 혼자서 하고, 남은 모두가 몸을 사리는 게 그들의 합의였다.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도 민지 씨는 많이 망설였다. '내가 뭔데 인터뷰를 해?'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왜?' 그러나 늘 하고 싶었던 말은 있다.
"법이 생겼지만, 아직도 코피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어요."
민지 씨는 코피노 엄마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다. 몇몇 언론이 필리핀에 가서 그들을 취재하면서 그 특징을 이른바 '업소 여성'으로 한정해왔는데, 민지 씨에 따르면 그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게다가 내막을 들여다보면 아이 양육비와 병원비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직업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있다.
"필리핀으로 어학 연수를 하러 갔다가 현지 여자 선생님과 눈이 맞은 한국 남성이 있어요. 애인 집에 빌붙어 살다가 아이가 생겼는데, 결혼 약속 받겠다고 한국 돌아가서는 나몰라라 했죠. 그러는 동안 그 여성은 아이 병원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학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바를 전전하다가 결국 업소로 가게 됐어요. 그런데 그 아이는 이제 세상에 없어요."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법이 시행되면서 웹사이트 배드파더스를 만든 초기 멤버들은 모두 본업으로 돌아갔다. 민지 씨가 말하기를 배드파더스는 비영리 단체가 아니고,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 만나서 만든 웹사이트일 뿐이라고 한다. 법이 바뀌었어도 양육비를 못 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민지 씨에 따르면 그들은 명예욕이 없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구 씨와 민지 씨가 할 일은 남은 것 같다. 2021년 12월 구 씨는 가해자 신상 공개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민지 씨는 홍보 담당으로서 이 판결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쓰고, 이에 동의하는 수만 네티즌을 모아야 한다. 애초에 양육비 이행법이 생기면서 트위터 계정도 잠깐 정지했지만, 다시 살렸다. 이어질 재판을 준비하려면 여론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도 문제다. 배드파더스의 일원이 열심히 싸운 끝에 만들어진 양육비 이행법을 보면 고의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에겐 운전면허 정지, 출국 금지, 명단 공개 조치가 따르지만, 뜯어보면 벌 받을 사람이 얼마 안 된다. 운전이 생업인 사람이라면 예외가 허용된다. 그간 배드파더스가 신상을 공개한 사례는 약 1천 건인데, 법이 신상을 공개한 사람은 두 명이다(2021.12.29. 여성가족부 누리집 기준).
게다가 이 법은 코피노 문제와 아직 밀접하지 않다. 민지 씨가 코피노 문제를 처음 인식한 7년 전만 해도 코피노 피해 아동의 수는 3만이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서 4만이 되더니 이제 5만까지 왔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코피노 가족은 빈민가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하층민일수록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경우가 많아 집계가 어렵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 여성 대부분은 필리핀에 있다. 한국에 와서 양육비를 요구하는 것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소송을 해서 친자 확인이 되면 대부분 승소하지만 국제 소송이라 비용 부담이 크다. 민지 씨에 따르면 소송 비용은 약 500만 원인데, 그 돈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나눠서 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양육비 이행법이 생겼지만 이는 국내 피해자에게만 초점을 두고 있어서 승소해도 양육비를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지 씨는 곧 필리핀에 갈 생각을 하고 있다. 현지에서 피해 접수부터 법적 지원까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려고 한다. 당장 구 씨의 재판도 준비해야 하고 코로나19로 하늘길도 막혀서 당장은 어렵지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요새 민지 씨는 아침마다 어학원에 간다.
이런 목표를 세우기 전까지 민지 씨의 직업은 바리스타였다. 그 삶을 물으니 "커피만 내리는 게 아니라 로스팅도 하고 라테 아트도 하지만" 직업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 늘 출근 시간이 바뀌었어도 언제 일어나든 양육비를 둘러싼 온라인 상황부터 살폈다. 배드파더스가 삶의 1순위였다.
요새도 민지 씨의 하루는 이렇게 돌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네이버와 구글에 배드파더스와 양육비, 미혼모, 한부모 같은 키워드로 검색을 한다. 각종 커뮤니티도 돌아다닌다. 그것이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양육비 문제에 대한 여론을 두루 살피는 것이다. 그런 뒤에 필요한 말과 글이 있으면 트위터와 여러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
민지 씨는 홍보 담당이라서 온라인에서 주로 움직이지만,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오프라인에서도 뛴다. 구 씨의 재판을 앞둔 시기에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국회의원한테 봐달라고 한 게 아니다. 이렇게 시위를 하고 사진을 남기면 탄원서를 같이 써줄 사람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드파더스 활동이 정점에 달했을 때는 집단 시위에 많이 참여했다. 품앗이 시위였다. 싱글맘A가 있다고 치자. 사정이 같은 싱글맘 스무 명이 전남편 집에 가서 목소리를 낸다. 다음 날엔 같은 인원이 싱글맘B의 전남편 집으로 간다. 이 시위단에 민지 씨도 늘 끼였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한다고 누군가한테 말했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애도 안 낳은 '아가씨'가 왜 그렇게까지 해?"
민지 씨에 따르면 이건 "욕만 먹고 돈은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까지 일하는데, 보상은 없다. 오히려 돈을 쓰면서 했다. 7년 전에 시작한 코피노 후원을 지금까지 한다.
게다가 후원금은 차차 늘었다. 매월 8만 원씩 리아를 후원하게 됐다고 친구한테 말했더니 친구도 덩달아 했는데, 친구는 리아보다 형편이 나은 여성과 연결되어 매달 3만 원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지 씨는 그 친구랑 싸웠다. 한참 지나서야 친구가 자신과 싸우고 후원을 끊었다는 걸 알고 그걸 넘겨받은 것이다.
"'내가 왜 이 일을 할까' 하는 생각조차도 별로 안 해본 것 같아요. 양육과 생계 활동을 같이 하는 싱글맘보다 덜 바쁘니까 했고, 그냥 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했어요. 세상을 바꿔보자고 큰 뜻을 가지고 한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하고 있는 일인데, 남들이 안 하니까 그만둘 수가 없는 거죠."
누군가 아이 낳고 와서 하라고 말했던 것처럼, 민지 씨는 양육비 문제의 피해 당사자가 아니다. 결혼 생각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아이는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잖아요. 어른이 나서야 하는 일인 거죠. 결혼 안 하고, 아이 안 낳았어도 어른이니까 나한테도 책무가 생겼다고 봤어요."
민지 씨는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의 일부"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알아버렸으니까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아무도 안 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