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은 17대 국회부터 꾸준히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가 부족해서일까? 왜 일부 기독교인들은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벌이는 걸까? 종교인이라면 무조건 차별금지법에 반대할까?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이 아직까지도 실현될 수 없었던 배경을 짚어보자.
차별금지법안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이 글을 참고하면 된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가장 처음 발의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입법 권고가 있었다.
17대 국회부터 2013년 19대 국회까지 7번이나 입법이 시도됐다. 그중 4번은 논의도 해 보지 못하고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나머지는 반대에 밀려 2번은 입법 철회, 1번은 입법이 포기됐다. 결국 한 번도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했다.
2021년 현재 세 가지 차별금지법안이 발표됐다.
세 법안은 차별 사유에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포함하여 차별 행위를 구제한다는 골자는 비슷하다. 크게 차별 사유의 개수, 차별 영역과 진정인에 대한 구제 방안에서 차이가 있다.
①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법안
: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때 참조하라는 임시법안이다. 정식으로 발의된 법안은 아니다.
이 법을 적용하는 차별 사유는 21가지. 성별, 장애, 질병 경험,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
②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로 낸 차별금지법안
: 인권위안의 차별 사유에 두 가지를 추가해서 23가지(+언어, 국적 추가). 법원이 차별 가해자에게 적극적 차별시정조치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인권위도 차별적인 행동을 고치라고 강제할 수 있는 '시정 명령' 절차가 있다.
③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대표로 낸 평등에 관한 법률안
: 이른바 평등법. 인권위 안과 동일하게 21가지 차별 사유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한다. 장혜영안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적극적 차별시정조치 판결 절차를 도입했다. (다만 인권위의 시정 명령 조치는 없다.) 형사처벌 조항은 없고, 특이하게 차별 금지 영역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반으로 한 모든 영역'을 명시했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서 성희롱과 혐오·차별 발언 논란이 일었던 사례를 고려한 방안이다.
④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로 낸 평등에 관한 법률안 (8월 9일 추가)
: 인권위안과 동일하게 21가지 차별사유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한다. 법원이 차별 가해자에게 적극적 차별시정조치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인권위도 시정 명령을 할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한데, 장혜영안보다 양형 기준이 세다.
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표로 낸 평등에 관한 법률안 (8월 31일 추가)
: 인권위안과 동일하게 21가지 차별사유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한다. 구체적으로는 고용, 재화·용역, 교육, 행정·사법절차로 나누었다. 법원이 판결 이전에도 차별을 중지하라는 임시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인권위도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차별 사안이 중대할 경우, 인권위가 차별 피해자의 소송을 지원할 수 있다. 고용에 관한 차별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은 사용자에게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할 수 있다. 사용자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차별 피해를 주장했다고 해서 불이익한 조치를 가할 경우, 무효가 된다.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법을 적용하는 영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구체적으로는 고용, 재화・용역, 교육, 행정・사법절차 4가지를 명시했다. 차별을 당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권위 진정, 재산 피해가 발생하면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악의적인 차별의 경우 손해액의 3배~5배 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그렇지 않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가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성적 지향∙정체성' 항목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73.6%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88%가 찬성하는 법안이 국민적 합의를 더 기다릴 이유가 있을까?
보수 기독교 세력의 강력하고 조직적인 차별금지법 반대 활동 때문에. 이들은 특히 차별 사유 중에 '성적 지향∙정체성' 항목에 반대한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안이 정부에서 발의되면 법무부 앞에서 반대 시위를 열고, 국회의원들이 발의하면 의원실을 상대로 문자와 전화를 퍼붓는 등 반대 로비를 벌여 왔다. 이를 통해 세력을 모으고,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정치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몇몇 정치인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나중에", "성소수자들만 따로 살게 하는 '퀴어 특구'를 만들자"고 발언하며 혐오를 부추겨왔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왜 통과 안 된 건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차별금지법, 이번엔 통과될까?
아니다. 포용과 사랑의 관점으로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종교 단체와 종교인들이 있다.
기독교계에서 대표적인 곳이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다. 2007년,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때부터 '반차별기독인연대'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성소수자 인권 포럼에 참여하거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연대하는 등 활동을 이어 왔다.
한국기독교장로회도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입장문을 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연대하는 시민단체 연합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는 기독교 단체도 포함돼 있다. 감리교퀴어함께, 무지개예수, 기독여민회, 섬돌향린교회, 믿는페미 등이 있다.
또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20년 개신교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의견(38.2%)보다 찬성하는 의견(42.1%)이 앞섰다.
불교계에도 있다. 23개 불교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 제정 불교네트워크'는 차별금지법 제정 10만 국민동의청원 운동에 동참했다.
한편, 미국의 루터교・장로교・성공회를 포함해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일본 등의 교회에서는 성소수자들에게 성직을 개방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불교네트워크: 나마스떼코리아, 나무여성인권상담소, 대불련 총동문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대한불교청년회,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바른불교재가모임,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불교환경연대, 불력회, 신대승네트워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정의평화불교연대, 종교와젠더연구소,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참여불교재가연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등이 참여했다.
2021년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넘었다.
청원 내용은 소관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전달된다. 차별금지법안은 이번 국민청원을 통해서야 처음으로 국회 논의 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차별금지법 제정까지 다음 과정을 밟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국회가 심사 기간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모두 읽은 당신, 수고했다!🌈 우리 사회에 차별금지법이 실현되기 위한 작은 실천으로 이 글을 주변에 공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