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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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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8

비닐 포장, 개별 포장 싫어하는 손님도 많아요

쓰레기 없이 장 볼 수 있는 동네 시장 <채우장> 이야기

쓰레기
플라스틱
제로웨이스트

에디터의 말

"나 이거 사고 싶은데, 용기가 없네."

"죄송해요. 용기가 없으면 구매할 수 없어요."

5월 1일 토요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카페 '보틀팩토리' 지하 공간과 뒷마당에 장이 섰어요. '채우장'이라고 불리는 이 장터에는 일회용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손님들은 백팩이나 에코백에 빈 반찬통이며 유리병을 챙겨 와 가득 채워 갑니다. 반면 지나가다가 빈손으로 구경 온 손님은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다음번엔 그릇을 들고 오겠다며 떠났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특이한 장터가 열렸을까요? 쓰레기 없이 살고 싶어 쓰레기 없는 장터를 열어 버린 보틀팩토리 정다운 대표를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보틀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정다운이라고 합니다. 일상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 '채우장'을 열고 있어요.

*채우장이란?

'버릴 것 없이 채우는 장터'라는 뜻이에요. '어떻게 하면 쓰레기 없이 장을 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예 쓰레기 없는 장터를 만들게 됐어요.

제가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일상을 지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면 장 볼 때 나오는 쓰레기가 가장 많더라고요.

마트에서 야채를 조금만 사도 비닐, 스티로폼, 랩 같은 게 엄청 많이 나오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 없이는 장을 볼 수 없는 환경이죠.

채우장에서는 동네의 소규모 생산자, 판매자들의 상품을 포장 없이 판매해요. 소비자가 직접 용기를 챙겨와서 채워 가요. 먹거리나 액체류는 무게를 달아서 팔고요. 2019년 4월부터 매달 열렸고, 최근 코로나 때문에 반년 정도 쉬었다가 5월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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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장에서 산 음식을 담아 가는 모습.
채우장에서 산 음식을 담아 가는 모습.

5월에는 동네 특집으로 반찬가게, 두부가게, 만두가게가 참여했어요. 이외에도 참기름, 요거트, 원두, 향신료 같은 먹거리와 베이킹소다, 세제, 문구류 같은 물건도 팔았어요.

용기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살 수 없나요?

네. 지갑만 들고 오면 되는 장터가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위험한 장터죠. 그 자리에서 시식해보고 '어, 이거 사볼까?' 이렇게 생각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칫하다 아무것도 못 팔게 되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미리미리 SNS를 통해서 판매 예정인 물건을 공지해요. 첫 번째 채우장 때는 한 달 전부터 열심히 홍보했어요. 거의 소비자 교육의 느낌으로… "이렇게 좋은 것들을 팔 건데, 이런 용기를 가져오셔야 해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오셨고, 또 용기를 너무 잘 챙겨 오셨어요. 그때 나온 상품들이 거의 다 팔렸지요.

손님들이 채우장에서 산 물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점점 손님이 많아졌어요. 다양한 용기에 먹거리가 담긴 걸 보면 정말 예쁘거든요.

손님들이 찍은 사진으로 만든 채우장 포스터.
손님들이 찍은 사진으로 만든 채우장 포스터.

어떤 용기를 가져와도 검정 비닐봉지에 담거나 스티로폼 접시에 랩으로 칭칭 감은 것보다 훨씬 예뻐요. 다양한 용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그래서 매달 채우장 포스터도 손님들이 찍은 사진으로 만들어요.

그래도 손님 입장에선 불편하지 않나요?

포장 없이 장보기가 불편한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장 보고 나서 집에 온 다음이 편해지거든요. 마트나 인터넷에서 뭘 사면 정리해야 될 게 너무 많잖아요. 랩 뜯고, 비닐 뜯고, 라벨 떼고, 다 옮겨 담고… 일회용 용기에 김치나 소스 묻은 건 잘 닦이지도 않고. 다 모아뒀다가 버리러 가야 하고. 채우장에서 장을 보면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사 온 그대로 냉장고에 넣고, 찬장에 넣고.

물론 불편한 점도 있어요. 개별포장 된 걸 한 개씩 사가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기 용기를 꺼내고 담고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다들 용기를 들고 줄을 서 있어요. 조금 오래 걸리니까 짜증이 날 수 있는데, 신기하게 짜증을 내는 분이 없어요. 아마 제로웨이스트에 동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고 기다려 주는 것 같아요.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 아닐까요?

미리 용기를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 지나가다 들어와 보니까 사고 싶은 게 생길 수 있잖아요. 저희가 일회용품을 준비했다가 드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아, 다음에는 뭔가 담아 갈 걸 챙겨와 봐야겠다' 다짐하는 경험이 됐으면 해서요.

새로운 경험일 수 있잖아요. '물건을 구매할 때 비닐에 담아 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내가 챙겨가서 살 수도 있구나.'

채우장 때문에 그런 습관이 생기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사실 그게 엄청나게 새로운 경험은 아니거든요. 옛날에는 일회용품 없는 소비가 꽤 흔했어요. 주전자를 가져가서 막걸리를 담아 온다든가, 병을 씻어 가서 참기름을 받아 온다든가, 중국집 배달 시켜 먹으면 그릇을 내놓는다든가… 채우장에서 그런 모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채우장에 다녀간 어떤 손님이 그런 글을 쓰셨더라고요. 의외로 소비자는 준비되어 있다고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판매자들은 어떤가요? 불편해하지 않나요?

동네 가게를 섭외하다 보면 사장님들이 "우리가 불편해서 안 돼."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일회용품으로 미리 싸 놓지 않으면 시간이 더 걸려서 손님들이 싫어해." 보통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럼 저희는 이렇게 말하죠. "그렇지만은 않아요. 요즘은 일회용품이 많이 나오는 걸 안 좋아하는 손님들도 있어요."

동네 가게는 어떻게 섭외했나요?

제가 일상에서 일회용품 없이 살고 싶어서 채우장을 시작했다고 이야기 했잖아요. 그러면 결국 제가 사는 동네가 바뀌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동네 가게를 하나하나 섭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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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찾아간 곳은 35년 된 참기름 집이었어요. 생각보다 쉽게 섭외됐어요. 참기름은 어렵지만 고춧가루, 깨 같은 가루류는 가능하다고 하셨거든요. 지금은 채우장에서 참기름도 파세요.

그다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가게들을 찾아갔어요. 맛있는 수제 시리얼을 파는 곳, 원두를 로스팅하는 카페, 반찬가게, 만두가게… 평소에 자주 가던 곳에서 쌓아 온 관계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렵지 않게 승낙을 받았죠. 제가 섭외 실패한 가게에 다른 단골 친구가 가면 성공하기도 하고요.

소비자가 원해서 일회용품을 써야만 한다던 판매자들의 생각이 바뀌었나요?

안 겪어 봐서 몰랐다고 생각해요. 결국 경험이 중요하더라고요.

채우장이 열리고 점점 사람이 많이 오면서, 줄도 길게 서고, 몇 시간 만에 제품들이 완판되고 했어요. '더 불편하게 파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고 다 팔리네? 이게 되네?' 그런 점을 보여드리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동네에서도, 멀리서도 찾아오시고, 채우장 하는 날에는 이 골목이 들썩들썩하니까요. 이제는 먼저 하고 싶다고 연락 주시는 가게들도 있어요.

한 번은 농부님이 야채를 가지고 오셨는데요. 종이봉투를 잔뜩 갖고 오신 거예요. 제가 조금 신경이 쓰여서 말씀 드렸죠.

"이건 꺼내놓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 그래도 있어야 돼요."

"괜찮아요. 손님들이 가져올 거예요."

봉투가 없어서 못 담아 줄까봐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장 열리기 직전까지도. 그런데 정말로 다양한 용기를 가져오시는 손님들을 보고 나중에는 "어, 채우장 되게 신기하네. 정말 다 가져오네요?" 하시더라고요.

채우장을 넘어서 동네가 변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번에는 동네에 새 떡집이 오픈했는데요. 떡이 다 일회용품으로 포장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용기를 들고 가서 "여기 담아서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쭤봤어요. 보통 아침 일찍 가면 포장 작업을 하기 전에 살 수 있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장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 이상하네? 그전에도 두 명이나 통을 들고 와서 물어보고 갔는데… 이 동네 이상하네." 속으로 뿌듯했죠. 이상한 동네가 되어서 좋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가지각색의 용기를 만났을 것 같아요.

맞아요. 매력적인 것도 너무 많아요. 한 단골은 아주 오래돼 보이고 특이한 법랑 용기를 가져오셨더라고요. 너무 예뻐서 이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어머니한테 물려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법랑에 항상 누룽지를 담아 가셨어요.

예쁘거나 특이한 용기를 가져올 필요는 없어요. 부피가 너무 크면 부담되기도 하고요. 다양한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나와요. 지퍼락을 씻어서 차곡차곡 모아놨다가 가져오기도 하고요. 사과나 배를 감싸고 있던 과일 완충재도 요긴해요. 유리병이 깨지지 않게 감싸기도 하고요. 대파처럼 흙이 묻어있는 채소를 싸기도 좋고요. 아이디어가 정말 무궁무진하더라고요.

한 번은 고춧가루를 파는데 깔때기가 한 종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가져오는 용기가 다 다르니까 입구 크기가 다른 거예요. 사이즈가 안 맞으니까 담는 데 너무 오래 걸렸죠. 그런데 손님 중 한 분이 알려 주시더라고요. 그냥 종이를 말아서 하면 어떤 병이든 입구에 딱 맞는다고요.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다고 해요. 판매자도 소비자에게 배우기도 하고. 지혜가 오간다는 느낌이었어요. 재미있어요.

다른 동네에서도 채우장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는 않고, 더디고,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걸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가게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보다 제로웨이스트라는 키워드가 많이 노출되고 있기도 하고요.

동네 가게에 용기를 들고 가서 '일회용품 말고 여기에 담아주세요' 해 보는 거죠.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만약 다음 날 다른 사람이 또 오고, 다음 주에 또 오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런 손님이 점점 늘어나면 결국 가게는 바뀌지 않을까요?

보틀팩토리는 어떤 곳인가요?

보틀팩토리는 지속가능한 일상 가이드 플랫폼이에요. 일회용 플라스틱 컵, 테이크아웃 컵을 줄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가능할까?' 싶어서 '보틀라운지'라는 카페를 만들어 봤고요. 공유에 적합한 컵을 개발해서 일회용 대신 공유하는 '보틀클럽'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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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틀라운지 카페에서 3분 만에 보틀클럽에 가입하면, 서울 시내 11곳 카페에서 다회용 컵 대여・반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생긴 컵인데요. '나를 돌려주세요(Return Me)'라고 써 있어요. 돌려줘야 하는 컵이에요. 보틀라운지에서는 일회용 컵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기 컵을 가져오거나 이 컵을 빌려 갔다가 돌려줘야 해요. 다른 카페 10곳에서도 함께 이런 대여・반납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어요.

채우장도 동네에서 제로웨이스트 일상이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시작했고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네요.

네. 이번 생은 실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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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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