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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한슬
에디터 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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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7

대선후보들, 기본소득 이야기 왜 하다 말았죠?

기본소득당 오준호 대선후보를 만났다

2022대선
기본소득

에디터의 말:

솔직히 말하면 이번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의제는 기본소득 vs 선별복지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처절하게 틀렸다. 여당의 대선후보는 경선 때만 해도 기본소득, 기본금융, 기본주택 3가지를 최전선에 내세웠다. 하지만 본선에 들어서자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야당의 대선후보들도 대응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기본소득에 관심이 없었다. 한 정당만 빼고.

이름부터 기본소득당. 그들이 내세운 오준호 대선후보는 <세월호를 기록하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2050 대한민국 미래보고서> 등을 써낸 작가 출신으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이기도 했다. 즉 기본소득을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 기본소득만큼은 진심이다.

그래서 오준호 후보가 내세운 다른 공약들에 대한 관심을 잠시 접었다. 기본소득 하나만 끈질기게 물었다. 왜 해야 하는지, 진짜 할 수 있는지, 그동안 들었던 다양한 의구심을 전부 다 물어봤다. 설득력 있나? 매력적인가? 오준호 후보의 대답을 듣고 판단해보자.

기본소득 논의, 어디 갔지? 왜 사라졌지?

검은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누구나 나답게. 기본소득 대한민국. 기호 5번 오준호'라고 쓰여진 선거 포스터를 가리키며 웃고 있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대선후보가 자신의 대선 포스터를 가리키고 있다.

Q.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진전되었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주요 의제도 아니었죠. 기본소득에 대해 이렇게 논의할 게 많은데도 활발하게 이야기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오준호: 미래를 위한 제도는 있으나 그걸 준비할 정치인들이 너무 낡은 것이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기본소득과 같은 대안을 과감하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은 실험들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체감을 시켰던 것도 있고요.

대선 국면에 대해 얘기하자면 저도 굉장히 아쉬워요. 기본소득, 최소한 소득 보장 정책을 겨루는 대선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리스크만 남았죠. 가족 리스크, 본인 리스크, 선본 리스크…

촛불 정국이었던 2017년 대선에서는 보수 정치인이었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복지하려면 증세를 하자"고 얘기했어요. 저는 여러 가지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직한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거든요.

2022년 대선에서는 그런 목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기본소득당이 저라는 후보를 낸 것이기도 합니다.

Q.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전 국민이 기본소득을 경험하기도 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의제가 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오준호: 오히려 그 지점이 실마리를 주기도 해요. 재난지원금 직후에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과 찬성이 상당했죠. 하지만 유력 대선 후보들은 재원 문제가 있다면서 용돈 수준의 소액을 제시했어요.

재난지원금으로 촉발된 기본소득에 대한 상상력이 축소되어버린 거예요.

'되게 좋은, 내 삶의 든든한 무엇이 될 줄 알았는데, 정치인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당장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고, 그런데도 돈은 들 것 같고. 굳이 저렇게 해야 될까? 다른 급한 게 너무 많은데…'

재난지원금을 계기로 자극받은 꿈이 있는데 정치인들이 그 꿈을 이끌어 나가지 않고 바람을 빼버린 거죠. 저는 기성 정치인들과 거대 정당들에 큰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 꿈을 다시 한 번 불어넣기 위해서 애쓰고 있어요. 며칠 남지 않은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당장 엄청난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약속은 못하지만, 그래도 저와 같은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저를 중심으로 유의미한 득표를 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3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원래 커다란 바위를 깰 때에는 망치만 두드리는 게 아니라 틈에다가 쐐기를 박아야 돼요. 이번 대선이 쐐기가 된다면 기본소득에 대한 또 다른 논의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거라고 봐요.

Q.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에 청년 기본소득 실험을 했던 힘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고 평가하셨는데요. 다른 지역에서도 지방 단위의 기본소득 정책을 펼칠 수 없을까요?

오준호: 할 수 있죠. 대표적인 케이스가 정선입니다. 강원랜드 카지노 수익을 배당 받은 재원으로 적더라도 기본소득을 해 보려고 시도 중이에요. 2021년 '정선군민 기본소득 도입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했습니다.

제주도의 경우에도 논의가 많죠. 제주도에 관광을 하러 오는 분들에게 입도세를 받아 그 수입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든지. 사실 관광수익은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것인데, 일부에게만 그 수익이 돌아가는 것은 맞지 않으니까요. 동시에 관광객이 너무 몰려서 자연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는 현상도 적당히 컨트롤할 수 있을 거고요.

이렇게 기본소득을 통해 각 지방 특유의 다양한 공유재산을 함께 가꾸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나누자는 실험이 가능해요. 상상력을 자극해 보면 더 할 것들이 많아요. 국가 차원에서 조세를 거둬서 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기본소득 정책이 많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 왜 해야 하지?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턱에 손을 대고 무언가 생각하고 있다.

Q. 한편으로는 궁극적인 질문이 들기도 하네요. 기본소득을 왜 해야 하죠?

오준호: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제 삶의 안정을 일자리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기본 약속이잖아요. 그중에서 '일할 수 없는 사람만 선별해서 도와준다'는 복지 제도를 마련하고 있고요.

완전고용 시대에는 이 시스템이 작동 가능합니다. 한 번 취직하면 최소 10년, 20년 일하는 사회가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회가 아닙니다. 1년 후, 2년 후 내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회입니다. 인생에서 어떤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시대지요.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에만 의존해서는 삶의 존엄성을 갖기 어렵다고 봅니다. 최소한의 소득은 권리로서 보장하는 체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Q. 나머지 두 가지를 듣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어요. "일자리에 의존하는 시대가 끝났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일해서 돈을 벌어야 먹고 살지." 이게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가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살아왔고요.

오준호: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 번 제대로 겪었다고 생각해요. 내 잘못이 아닌데도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감소되었죠.

그래서 국민이 국가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압박했고, 그 결과가 전국민 재난지원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선물로 준 게 아니라 국민의 요구였다고 봐요.

실제로 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국민들이 깜짝 놀랐죠. "아, 이런 게 가능하구나." 국가가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지원금을 지급하고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을 실제로 처음 해본 거잖아요. 그 충격으로 재난지원금 직후에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지기도 했어요.

팬데믹뿐만이 아니죠.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 현상도 일어나고 있어요. 키오스크가 도입되면서 서비스직 일자리가 사라지고, 로봇이 들어오면서 제조업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일자리가 적정한 소득과 평생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게 되었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혹은 일을 줄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기본소득은 이런 상상을 실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일 말고 다른 생계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 같은 대안이 등장한다면 사람들의 상상력이 많이 자극될 거라고 봐요.

기본소득당은 '노동의 권리'는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기본권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죠. 그와 별개로 노동을 덜할 수 있는 권리, 노동에서 벗어나서 임금의 가치로 측정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목표로 합니다.

Q. 기본소득을 해야 하는 다른 두 가지 이유도 알려주세요.

오준호: 두 번째는 방금 말씀드린 것과 이어지는 부분인데요. 성장 중독 사회에서 벗어나서 녹색 사회, 생태 사회로 나아가는 전환의 수단이 기본소득 제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더 성장해야 한다는 '성장 중독'으로 이어져요. 파이를 나눠먹기 전에 파이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는 비유를 많이 하잖아요. 사실은 파이가 불평등하게 분배된 게 더 큰 문제인데 말이죠. 성장 중독은 과로 중독으로 이어지고, 과로 중독은 소비 중독과도 맞물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생태계의 한계를 맞닥뜨리고 있잖아요. 여기서 더 많이 성장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지금까지 후손의 자원까지 끌어다 써버렸고, 기후위기라는 재앙을 불러왔잖아요.

그래서 성장 중독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잘 나누는 것이 국가와 공동체의 기본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을 줄이고,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부를 나누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성장에 몰두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 시간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실현하고, 공공성을 띈 일에 더 많이 참여하는 사회로 가자는 것이죠. 기본소득은 그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점점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본소득이 효과적인 해법이라고 봅니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조세체계나 복지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별복지 방식을 고수하면서는 개혁이 어려워요. 증세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선별복지 방식은 복지의 수혜를 받는 계층과 복지 재정을 부담하는 계층이 분리되어 있어요. 반면 기본소득 같은 좀 더 과감한 보편복지는 다 같이 증세에 동참하고, 다 같이 복지 혜택을 받습니다. 그래서 복지 국가로 나아가기가 훨씬 더 수월하기 때문에, 양극화 해소에는 기본소득이 효과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자"는 말은, 더 이상 성장하지 말자는 뜻인가요?

오준호: 그렇지는 않아요. 기본소득당은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혁신의 성과가 국민의 자유시간이 늘어나고, 소득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죠.

정부가 '디지털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R&D(Research and Development) 지원을 할 때 문제점은요. 그 지원을 받은 기업은 더 많은 소득을 올리지만, 그 이외에는 그렇지 않아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거예요.

정부가 기업의 신기술, 신제품 개발 및 제품, 공정혁신 등에 소요되는 기술 개발 관련 비용을 지원하여 기술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지원 사업이다. 대부분의 대출 지원에 원금 상환과 이자 부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기본소득당이 추구하는 디지털 뉴딜은 조금 다릅니다. 국가가 공공투자를 해서 해당 기업의 지분을 획득합니다. 이를 '공유지분'이라고 합니다. 그 기업이 혁신에 성공해서 성과가 발생하면 국가가 공유지분만큼 수익의 일부를 배당받습니다. 이 재원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합니다.

또 '데이터 기본소득'이라는 정책도 있어요. 데이터란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여러 사람의 정보가 모여서 데이터가 되니까요. 그런데 기업들이 이 데이터를 가져가서 맞춤형 광고를 하고 수익을 내죠. 이를 독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본소득 데이터세를 도입해, 그 수익을 일정 정도 환수해서 분배하려고 해요. 다만 데이터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 데이터에서 발생한 수익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공약한 기본소득 월 65만원의 재원으로는 포함시키지 않았어요.

근본적으로 기본소득당은 모두가 공유하는 자원에서 발생한 수익은 다 함께 나눠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자산을 우리는 '공유부(共有富)'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토지, 천연자원, 데이터, 주파수 등이 포함됩니다.

Q. "모두가 공유하는 자원을 이용해서 발생한 수익은 나눠야 된다"는 거네요.

오준호: 물론 공유하는 자원을 가공하거나, 그것이 수익을 발생시키기까지 기여하는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에 대해서 적정한 보상이 있어야겠죠.

다만 공유자원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누군가가 독점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토지를 볼까요. 땅이라는 건 개인이 만들어낸 게 아니죠. 그런데 토지 소유권을 가진 사람은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전면 독점할 권리를 갖습니다. 이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더 높은 과세를 통해 기본소득으로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IT 혁신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기업들도 사실 인류가 함께 쌓아온 지식에 기대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일정 정도는 그 이익을 사회 전체 구성원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적으로도 글로벌 IT 기업의 초과 이익을 어느 정도는 환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디지털세'에 대해 합의를 해나가고 있어요.

기본소득,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거야?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Q. 한 사람당 월 65만원이라는 액수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이 정도면 노동을 줄이고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데 충분한가요?

오준호: 월 65만원은 충분한 기본소득의 출발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끝은 아니고요. 기본소득당의 공약은 임기 중 2026년까지 기본소득 월 65만원을 실현하고, 점차적인 조세 개혁을 통해 2030년부터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의 효과를 체감하면 증세 논의에 더 많은 뜻을 함께할 거라고 봅니다.

기본소득은 충분한 금액일 때 매력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공약한 소액 기본소득 월 8만원은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월 65만 원은 어떤 기준으로 나왔냐면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 급여를 참조했습니다. 현재 중위소득의 30% 기준 올해 57만원쯤 되고요. 2026년에는 63만원쯤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기본소득이 적어도 이보다는 높은 액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소득이 받치고 있어야 빈곤으로 가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기본소득은 선별복지에 비해 조세 저항이 적을 거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더 클 수도 있어요. 대기업 회장도 월 40만원을 받고, 빈곤층도 월 40만원을 받는 거잖아요. 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를 어떻게 설득하나요?

오준호: 기본소득 설계에서도 재원을 마련할 때 넉넉한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하자고 하면 공평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받는 돈은 똑같은데, 조세 부담에서 차등을 두는 것입니다.

관건은 이겁니다. "부자들한테 돈 받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게 더 공평하지 않은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죠. 부유층이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전체 국민의 40% 이하는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습니다. 정부가 복지 정책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복지 재정이 늘어나지 않거나, 너무 천천히 늘어난다는 거예요. 선별복지 시스템에서는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이 복지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스웨덴의 경제학자 발테르 코르피와 요아킴 팔메의 연구 <재분배의 역설>(1998)에 따르면 실제로 선별복지를 하는 국가보다 보편복지를 하는 국가가 장기적으로는 복지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고 해요. 그래서 영국의 사회정책학자 리처드 티트머스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은 가난한 정책이다."

Q. 그렇지만 복지 재정을 많이 쓰는 게 꼭 좋은 걸까요? 국가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모두가 자기 힘으로 일해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오준호: '복지의 함정'을 파는 것인데요. 현재 우리나라 복지는 선별적이고, 신청적이고, 잔여적입니다.

선별적이라는 건 복지 대상자를 골라낸다는 뜻이고요. 신청적이라는 건, 어떤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자동으로 주는 게 아니라 신청하는 사람에게만 제공한다는 거죠. 잔여적이라는 것은 '사람은 노동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노동 시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최소한의 부분만 지원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요. 지원을 받던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조금 벌자마자 모든 지원이 끊깁니다. 일자리를 한 번 찾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먹고살 걱정이 없었던 시대라면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지금은 1년, 6개월, 심지어 3개월짜리 비정규직이 태반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일이 끊겨서 다시 복지 지원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차라리 철저하게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서 복지 지원을 계속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뭐하러 힘들게 일자리를 구하겠어요. 그래봐야 저임금이고, 잘리기 쉬운데요. 결과적으로 선별복지 제도는 복지냐, 일자리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합니다.

기본소득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좀 힘든 처지가 되든,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든, 그만두든, 자기계발을 하든, 기본소득은 똑같이 따라옵니다. 일이냐 복지냐 선택할 필요가 없죠. 그런 의미에서 복지의 함정을 깨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Q. 국민 모두 기본소득을 받으면 한꺼번에 물가가 오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기본소득 65만원 받으니까 그만큼 월급에서 줄어들어도 괜찮지?"라고 생각하는 기업도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고요.

오준호: 기본소득이 물가에 바로 반영될 거라는 예측은 보수적 경제학의 왜곡된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논리는 최저임금 인상도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물가가 오르는 건 아니에요.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게 맞습니다. 다양한 요인이 반영되어, 최저임금과 물가가 함께 올라가죠.

만약 기본소득이 현재 경제의 외부에서 돈을 찍어서 헬기로 뿌리는 방식이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당의 방식은 이미 우리 경제 안에 발생한 부를 효율적으로 재분배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골프를 치러 가서 쓰는 돈의 일부에 과세해서, 그 돈을 수십만 청년들이 보다 나은 식사를 하고, 자기개발을 하고, 공연을 한 편 더 보는 데 쓰도록 배치를 바꾸자는 거죠.

말씀하신 것 중에 "기본소득을 주니까 임금을 깎자"는 우려는 타당합니다. 이는 최저임금과 같은 제도로 안전장치를 둬야 합니다. 기본소득을 반영해 최저임금 이하로 월급을 주는 건 불법이니까 할 수 없을 거고요.

다만 좀더 저임금이라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예를 들어 저는 고소득 노동자 중에도 시민단체 등 자기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자리에 관심을 갖는 분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가치 지향적 일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적기 때문에 이동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런 부분이 기본소득으로 보완된다면 소득에 대한 불안을 떨치고 이동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사회적으로도 더 좋은 배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본소득, 무슨 돈으로 할 건데?

안경을 쓴 남성이 무언가 말하고 있다.

Q. 재원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구체적으로 무슨 돈으로 월 65만원부터 100만원까지 지급하실 계획인가요?

오준호: 제가 기본소득을 위해 새로 도입하려고 하는 세금은 세 가지입니다. 시민세, 토지세, 탄소세.

시민세는 '지식 공유부'에서 나온 이득을 배당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가계소득, 양도소득, 상속증여에 의한 소득에 10% 세율을 추가해서 과세하겠습니다.

토지세는 '토지 공유부'에서 나온 이득을 배당합니다. 모든 민간 토지에 토지보유세를 도입해 국민에게 평등하게 나누겠습니다.

탄소세는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모든 화석연료 에너지에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수를 기본소득으로 배당하는 제도입니다.

이 외에도 기본소득과 중복되는 기존 복지제도를 조정・통합하고, 과세 제도를 정비하여 제원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Q. 결국 근로소득, 사업소득에도 세금이 늘어나겠네요. "아니, 아무리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도 그렇지, 내가 버는 돈이 줄어드는 건 싫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 같아요. 기본소득당의 계획대로 조세 저항을 더 줄일 수 있을까요?

오준호: 그 의심은 타당합니다. 한 가지 짚고 싶은 건 다른 대선후보들에게도 똑같은 의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기본소득을 하겠다고 하면서 증세 계획을 밝혔기 때문에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있는데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어마어마한 공약을 남발하면서 어떤 조세 개혁이나 증세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어요.

특히 윤석열 후보는 더 심하죠. 심지어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깎겠다면서 어떻게 공약을 지키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재명 후보는 탄소세의 장기적인 도입이라도 얘기했는데 말이에요. 우선 이 부분을 분명히 비판하고 싶고요.

대다수 국민에게는 세금을 더 내더라도 기본소득을 받으면 혜택일 겁니다. 세금도 늘어나지만,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이전보다 전체 소득이 늘어날 거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토지세를 재원으로 하는 '토지 기본소득'의 경우 무주택자를 포함한 88% 국민이 내는 세금보다 받는 기본소득이 더 크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Q. 탄소세 같은 경우에도 의문이 있어요. 탄소세는 궁극적으로 탄소 배출을 점점 줄여서 사라져야 하는 세금이잖아요. 어떤 기업도 탄소세를 내지 않고 효과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일텐데요. 결국 탄소세가 줄어들면 기본소득도 줄어들게 되나요?

오준호: 맞습니다. 기본소득에서 탄소세는 차차 줄어드는 것이 목표인 '교정 조세'가 맞습니다. 그래서 탄소세가 아닌 다른 재원들을 계속 발굴해가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단지 돈을 뿌리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탄소세는 도입하기가 쉽지 않은 세제예요. 전기, 난방 등 생활물가에 반영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세금을 기본소득으로 분배하자고 하면 도입이 더 쉬워지고, 정당한 탄소 가격을 책정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으로 물가 상승에 대한 불안을 없애주면서 탄소 배출을 감소하는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지요.

또 우리가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면 간접적으로 재원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습니다. 기후재난이 줄어들면서 절감되는 재원도 있으니까요.

Q.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는 건 실질적인 공포입니다. 기본소득만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요? 경제적으로 말이 된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광범위한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요?

오준호: 말씀하신 것처럼 낙관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당도 '기본소득 탄소세' 법안을 국회에서 발의하는 데에만 긴 시간이 걸렸어요. 탄소세를 반대하는 기업의 저항 역시 매우 격렬하고요.

사실은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미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2월 28일 발표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제6차 평보고서의 제2실무그룹 보고서에서, 이대로 탄소 배출을 할 경우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죠. 그 후로는 절감을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과 부산의 해안선 상승 피해가 충격적인 수준이 될 거라고 예측했어요.

IPCC 6차 보고서는 3개 실무그룹(working group) 보고서와 1개의 종합보고서로 구성된다. 제2실무그룹 보고서는 인류가 기후위기로 인해 직면한 위험 요소를 다뤘다. 자세한 내용은여기서 읽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도 선진국 중심으로 매우 강경하게 탄소 배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선언이 일어나는 시점이 올 거라고 봅니다. 그때까지 탄소 배출을 절감하면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지 못한 기업들은 IMF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예측 속에서 탄소세와 같은 가격 조정을 통한 탄소 절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사회가 탄소세를 받아들이게 만들 건지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의 상황이 거의 빙산을 향해 돌격하고 있는 타이타닉 같은 상황이라고 봐요. 빙산이 보이는데, 여기서 방향을 트는 데에는 너무 많은 비용도 들고 정치적으로 어려우니까 "그냥 가자, 무슨 일 있겠어?"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경기도에서 기본소득 정책 공론화 조사를 했을 때 새로운 재원 설계 방식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게 탄소세였어요.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점점 더 많이 절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기본소득의 설계대로라면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들, 탄소를 발생시키는 기업, 고소득자들이 대부분의 재원을 떠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기본소득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지지 않을까요?

오준호: 그 상황은 지금도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지 규모는 커지지 않고, 세금의 대부분은 복지 확대보다는 고소득자나 대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입니다. 주로 경제 정책이나 수출 지원이죠. 재분배보다는 친기업 정책에 힘이 실리는 거죠.

반대로 기본소득은 모두가 동참하는 제도입니다. 제도 운영이나 혜택에서 이해당사자가 됩니다. 서로를 확인하고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는 제도죠. 지금보다 다수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공정한 조세 제도와 소득 재분배를 압박하는 쪽으로 발휘될 겁니다. 저는 그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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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람들

  • 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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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정리
  • 조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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