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이 아닌데 군인이 죽는다. 아군의 성폭력과 2차 가해로 지난 8년간 자살한 여군이 세 명. 드러난 사건만 그렇다.
2021년 3월 2일,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장 중사가 후임 이 중사를 성추행했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수사도, 피해자에 대한 법적 지원도, 보호 조치도 없었다. 5월 21일, 이 중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이 6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랑하는 제 딸 공군 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6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6월 4일,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사퇴했다. 6월 7일, 국방부가 성폭력 예방 제도개선 전담팀을 3개월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군대에는 성폭력과 관련된 제도가 없었을까? 3개월짜리 전담팀이 운영되고 나면, 군대는 아군의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질까?
이 글은 군대 내 성폭력과 관련된 훈령, 지침, 매뉴얼이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성추행 사건에서 얼마나 작동하지 않았는지 하나하나 살펴본다.
군대는 엄격한 지휘체계와 명령, 규칙에 따라 돌아가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2019년 한 해 동안 군사경찰이 입건한 성범죄는 총 789건(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성매매 등을 포함한다). 이 중 군인・군무원을 상대로 한 강간・강제추행 등의 성범죄는 323건.
2020년 국방통계연보 197~202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있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248조 2항은 "성폭력을 유발하는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야간 근무를 바꿔서라도 회식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부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임 장 중사가 그를 성추행했다. 애초부터 금지사항을 어겼다.
신고할 곳은 많다.
군 내에서 성폭력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신고해도 된다.
성고충전문상담관이란, 국방부가 고용한 민간인 상담관이다. 군단급 부대마다 근무한다.
2013년, 육군 소속 노 소령의 성추행과 보복, 협박으로 부하 군인이 자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4년 국방부는 성고충전문상담관 제도를 도입했다. 같은 부대 상관에게만 상담할 수 있는 구조로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신고율을 높이고 독립성을 담보하고자 민간인 신분의 상담관을 고용했다.
2020년 기준 육군, 해군, 공군을 통틀어 성고충상담관은 48명이다. 상담관 1명이 상담을 위해 평균 1만487km를 이동해야 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
지휘계통을 따라 신고해도 된다.
현역 여군들의 생각은 회의적이다. 이렇게 신고할 곳이 많은데, 믿을 곳은 없다.
국방부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 경험이 있는 여군의 47.1%는 '관련자와 상의하거나, 보고하거나, 신고하는 방안을 고민하지도 않았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33.2%는 '고민은 했지만 신고를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이 중 44%는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아서'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서 신고한 성폭력 생존자를 위해, 군대 내에는 어떤 제도가 있을까? 실제로 그 제도는 작동할까? 신고 이후의 이야기, 수사 제도 편에서 정리했다.